[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재계가 다시 긴장 국면에 들어선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은 이미 재벌을 적폐로 규정하고 개혁을 약속했다. 경제민주화의 부활이다. 쟁점 법안인 상법 개정안을 비롯해 기존 순환출자 해소 공약도 있어 사각지대는 사라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존폐 기로에 휩싸이고, 선장을 잃은 삼성이 대관조직 폐쇄 등을 결정하면서 입법의 장벽도 사라졌다.
문 당선인의 재벌개혁 공약을 뜯어보면, 집중투표제 또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 도입이 추진된다. 총수 일가 등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을 통해 재벌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이 확대되면서 재벌에 대한 견제와 감시기능도 강화된다. 주총에 출석하지 않고도 인터넷 등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자투표제와 서면투표제, 모회사 주주들이 자회사나 손자회사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도 공약집에 실렸다.
해당 공약들은 모두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국회 벽을 넘지는 못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자유한국당 등 주요 4당이 법안 처리에 합의했던 바 있어 재합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소수 주주권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재계는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고 주주 의견이 왜곡돼 소송 리스크가 확대될 것을 우려한다. 특히 감사위원의 경우 재무상태조사권 등의 권한을 바탕으로 기업 기밀에 접근할 수 있다며 강력 반대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의 가장 큰 쟁점인 인적분할 시 자사주 규제도 공약 사항이다. 인적분할 후 모회사는 자회사의 자사주를 확보해 신주 배정 및 의결권 부활로 지배력 강화를 노릴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총수 일가의 편법승계에 활용된다고 보고 여러 갈래로 규제 법안을 마련했다. 특히 지주회사 미전환 그룹 중 지분 승계가 마무리되지 않은 삼성에 화살이 집중됐다. 삼성전자는 최근 지주회사 전환 포기와 함께 40조원을 상회하는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기로 해 논쟁 대상에서 벗어났다. 반면, 중견기업들은 올 7월 지주회사 자산총액 요건 상향과 맞물려 인적분할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해당 법안은 정당간 합의가 쉽지 않지만 일부 완화된 형태로 수정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성과 현대차 등에 직격탄이 될 기존 순환출자 해소 공약도 눈에 띈다. 시장 저항을 고려해 ‘단계적’ 적용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리스크가 적지 않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했던 개정안은 ‘3년 이내’ 해소를 의무화했다. 순환출자 해소는 금산분리와도 연결된다. 금융계열사의 타 계열사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내용도 공약에 있다. 관련 개정안은 의결권 한도가 3%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현재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돼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상당량을 처분해야 할 수도 있다. 보험사의 자산운용비율 3% 초과 계열사 지분은 7년 이내에 매년 20% 이상 해소해야 하는데, 기존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 기준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게 개정안 골자다. 계열 공익법인의 의결권 금지 법안에도 힘이 실린다. 공익법인 지분율이 높은 그룹들은 의결권 대체 확보를 위해 구조 변화 가능성이 있다. 이 또한 지배력 약화 이슈로 연결된다.
이미 지주회사 체제인 그룹들도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게 됐다.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자회사 및 손자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 내용이 공약에 들어가 있다. 공약이 실현되면 요건을 만족하기 위해 추가 지분 매입을 위한 비용 지출이 불가피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와 협력이익배분제 도입 등의 공약도 민감하다. 그밖에 횡령, 배임 등 경제범죄에 대해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고 사면권 제한도 약속해, 최순실 게이트 관련 재판을 받는 삼성과 롯데로서는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