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4대그룹에 대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됐다. 지난 5년간 30대그룹 자산은 줄어든 반면 4대그룹 자산은 커져 재벌 내에서도 상위권의 쏠림 현상이 심해졌다. 4대그룹의 자산규모는 급기야 지난해 말 30대그룹의 절반을 넘어섰다. 이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재벌개혁의 화살이 스스로를 향하게 만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4대 재벌 개혁'에 집중할 뜻을 밝혔고,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에 저승사자로 통하는 김상조 교수를 내정하며 칼을 뽑았다. 청와대 정책실장에도 재벌개혁에 강하게 목소리를 내온 장하성 교수를 임명했다.
21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삼성·현대차·SK·LG 등 4대그룹의 자산총액은 지난해 말 864조9000억원으로 2011년 말 647조6000억원보다 33.5% 급증했다. 같은 기간 30대그룹의 자산총액이 1642조5000억원에서 1317조8000억원으로 24.6%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에 따라 30대그룹 자산총액에서 4대 그룹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52.7%로 절반을 넘었다. 그룹별로 보면, 재계 1위 삼성의 자산규모는 5년새 42.0% 급증해 363조2000억원을 찍었다. 현대차도 41.4% 늘어난 218조6000억원에 달했다. SK와 LG 역시 각각 자산규모가 170조7000억원, 112조3000억원으로 25.1%, 11.5% 늘었다.
4대그룹에 대한 경제력 집중은 자산뿐 아니라 매출, 순이익, 증시 등 모든 분야에서 5년간 심화됐다. 30대그룹에서 4대그룹의 매출(690조4000억원) 비중은 2011년 52.6%에서 지난해 54.6%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37조8000억원) 비중도 7.0%포인트 높아져 지난해 69.4%를 기록했다. 주식시장에서의 쏠림 현상도 심하다. 4대그룹의 시가총액(663조2000억원) 규모는 증시 전체의 46.8%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이다.
무엇보다 새 정부가 출범과 함께 재벌의 경제력 집중 완화를 위한 경제민주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면서 실행 수위에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재벌을 적폐의 일환으로 보고 개혁을 약속했다. 불법·편법 경영권 승계와 함께 황제경영, 사익편취 등을 근절시켜 부당한 지배력을 차단하고 시장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특히 4대 재벌 개혁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30대 재벌 자산을 살펴보면 삼성재벌의 자산 비중이 5분의 1”이라며 “범삼성 재벌로 넓히면 4분의 1에 달하고, 범 4대 재벌은 무려 3분의 2가 된다”면서 경제력 집중 현상을 지적했다.
‘경제검찰’로 통하는 공정위도 4대그룹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김상조 공정위원장 후보자는 “공정위는 광범위한 재량권이 있는데 현행법을 집행할 때 4대그룹 사안은 좀 더 엄격한 기준으로 평가하겠다”며 “범 4대그룹이 30대그룹 자산의 3분의 2를 차지하니까 규제를 4대그룹에 맞춰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대선 선대위에 몸담아 이 같은 의견을 당시 문 후보에게 건의했고 공약에도 참여했다.
김 후보자는 특히 ‘삼성 저격수’로 불린다. 참여연대 재벌개혁감시단장, 경제개혁연대소장 등을 거치면서 재벌의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해왔고 그 화살은 주로 삼성을 향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논란 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거졌던 소송에 앞장서기도 했다. 삼성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자 다시 저격수 역할을 자임했다. 지난해 12월 국정농단 청문회에서는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에 대해 “그룹에 대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에는 참고인 신분으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 구도 등을 설명하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를 이끌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이 이날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하며 재벌개혁이 단순 엄포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는 평가다. 장 교수는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재벌개혁에 앞장서 왔다. 1998년 삼성전자 주총에서는 삼성 계열사 간 부당내부거래 문제를 파고드는가 하면, 2006년 장하성 펀드로 불린 기업지배구조개선 펀드를 주도하며 재벌 지배구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인선 직후 “사람 중심의 정의로운 경제를 현실에서 실천해 볼 기회라고 생각해서 직책을 맡기로 했다”며 대변화를 예고했다.
한편, 경제민주화 규제에 반대하는 재벌의 대표 논리는 ‘낙수효과’이지만 대기업의 고용·투자 감소세로 그 근거가 약화되는 양상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0대그룹 상장사 179곳의 고용규모는 지난해 말 85만7991명으로 전년 대비 1만3199명(1.52%)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비용 절감을 위해 퇴출이 쉬운 비정규직에 주로 칼끝을 들이대면서 비정규직 감소율이 정규직보다 훨씬 높은 현상도 빚어졌다. 정규직 수는 전년 대비 1.30%(1만709명) 감소한 데 반해 비정규직은 9.03%(4240명) 줄어 감원 폭에서 큰 격차를 보였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