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용어 중 ‘모데라토’(moderato)가 있다. ‘적당한’, ‘온건한’의 뜻으로 알레그로와 안단테의 중간 빠르기를 가리킨다. 빠르고 활발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맛은 없지만 색이 온화하고 적당해 듣기에 편안하다.
프랑스 새 대통령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은 공화당 내 좌파로 불리는 46세의 에두아르 필리프(Edouard Philippe)를 수상으로 임명했다. 필리프 수상은 지난 17일 새 정부의 개각을 꾸려 공개했고, 프랑스 언론은 이를 온건파들(moderes)에 의한 정부의 출현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마크롱 대통령과 필리프 수상의 온건정부는 시민사회와 좌·우파, 중도파를 모두 아우르는 새 인물들로 구성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내건 파리테(남녀동수법)를 완벽히 이행해 18명의 장관을 남녀 각각 9명 동수로 맞췄고, 시민사회로부터 3분의 1을 기용하겠다는 약속도 지켰다. 특히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된 니콜라 윌로(Nicolas Hulot)는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들의 러브콜에 꿈쩍도 안했지만 이번 마크롱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들여 눈길을 끌었다.
마크롱 내각 인사들의 나이는 천차만별이다. 최 연장자는 69세의 제라르 콜롱브 내무부장관과 동갑내기 르 드리앙 외무장관, 그리고 막내는 34세의 제랄드 다르마냉 예산장관과 33세의 무니르 바주비 디지털 담당 국가비서이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54.6세로 지난번 사회당 발스 정부의 54.8세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마크롱은 자신이 젊고 정치 경험이 짧은 것을 경륜 있는 인사들을 기용해 보강하고 적당한 속도로 프랑스를 끌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색깔을 보면 수상과 경제부 장관, 예산장관은 우파진영에서 등용했으며 그리고 8명은 좌파진영, 3명은 중도파이다. 그리고 36%는 정치적 색깔이 전혀 없다.
지난 19일 오독사(Odoxa)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프랑스인 66%가 새 내각 구성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프랑스인 70%는 마크롱 대통령이 우파 정치인 필리프를 수상으로 임명한 것에 만족하고 있고, 75%는 환경부 장관에 시민사회 소속 윌로를 임명한 것을 대환영하고 있다.
우리도 프랑스에 질세라 지난 9일 새 대통령을 맞이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뀐다고 나라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정치냉소주의자들을 무색하게 할 만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놀라운 행보를 연일 이어가고 있다. 적폐 대상인 검찰에 대한 개혁의지로 민간인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했고, 청와대 대변인도 언론인이 아닌 정치인을 임명해 신선함을 주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해 심금을 울렸다. 정치가 조금씩 정상화되고 국민통합이 한 발자국씩 실현되는 모습이다. 지난 19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87%는 문 대통령이 잘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취임시절과 비교하면 10%포인트 이상 기대 수준이 높아졌다. 이 정도면 문 대통령의 스타트는 완벽하다.
그러나 아직 속단할 수만은 없다. 새 정부가 제대로 구성되어 큰 틀에서 지향점이 윤곽을 드러낼 때 지금과는 상이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 대통령을 바라보는 기대가 너무 과도하거나 성급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치가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유권자가 리더를 성급히 평가해서는 절대 안된다. 새 리더에 대해 너무 큰 환상을 갖고 미리 영웅화 한다면 이는 실망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프랑스도 한국도 새 정부가 들어서 양국 국민을 모두 설레게 하고 있지만 한 가지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최연소의 마크롱 대통령이 나와 정파와 세대, 그리고 성별을 뛰어넘는 파격 인사를 통해 거침없는 정치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프랑스인들과 언론은 마크롱을 절대 영웅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마크롱이 태어난 아미앵(Amien) 시의 생가를 국민들이 줄을 지어 관광을 하거나 대통령이 입는 옷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유행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은 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언론이 보도하고 경남 거제도 생가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새 대통령에 대한 이러한 애정과 관심은 어쩌면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단지 우려하는 것은 새 것에 너무 큰 기대와 호기심, 경외감을 갖다보면 그만큼 실망도 커지게 된다. 그러니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박수를 알레그로가 아닌 모데라토의 템포로 조절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문 대통령이 과거 정부의 비정상화를 정상화 시키는 일에 매진함으로써 폭풍적인 찬사를 받고 있지만, 한 국가를 끌어가는 수장은 매번 국민의 마음에 드는 일만을 할 수가 없다. 그 때를 위해 지금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갈채를 남겨두는 절제의 미학을 발휘하기 바란다. 국민은 대통령이 잘못할 때도 지지해주고 기다려줄 만큼 성숙해야 한다. 좋다고 환호하다가 부지불식 간에 나쁘다고 화내는, 이렇게 냄비 같은 우리의 정치적 감성을 ‘적당히’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이번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과 달리 임기를 마치는 순간 국민의 영웅으로 남길 바라는 맘이 크다. 영웅은 결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법임을 우리 모두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