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기자] 34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가사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법률안이 잇달아 발의되고 있다. 법안이 제정될 경우, 가사서비스 종사자에게 근로자 지위를 부여해 4대보험과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2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사노동자에게 주 15시간 이상 근로시간과 연차, 주휴 등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보험에 가입하게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내용의 이른바 ‘가사노동자 존엄법’을 발의했다.
현재 가사노동자는 가사관리사, 산후관리사, 가정보육사 등 약 34만명에 이르지만 정작 근로기준법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문제는 그 수가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는데 있다. 지난 5월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기준 34만2992명 정도인 가사근로자 수는 4년 뒤인 2021년에는 40만7832명까지 늘어난다.
이와 관련해 국제노동기구는 2011년 가사근로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을 채택해 회원국들에게 전세계 1억명에 달하는 가사근로자의 근로자로서의 지휘를 인정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지난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가사근로자들의 노동권 보호를 위해 근로조건 보호를 위한 표준근로계약서 보급 등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국제노동기구와 인권위의 권고대로 가사노동자들의 노동권 보호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하고 이를 ‘가사노동자 존엄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며 법안을 발의하게 된 취지를 설명했다. 법안에는 ▲성희롱·폭력·폭언·모욕 등 가사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 금지 ▲현재의 알선 업체 방식이 아니라 양질의 가사 서비스와 가사 일자리를 제공하는 공익적 기관의 육성 및 지원 ▲사회보험 가입 등의 내용도 담겨있다.
더불어민주당 서형수 의원도 지난달 서비스 제공업체가 가사근로자를 고용하고, 서비스 이용자에게 파견할 때 일정한 근로조건에 기초한 이용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을 위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서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가사노동자는 서비스 제공기관(중개기관)과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가정은 제공기관에 수수료를 지급하고 가사노동자를 파견받을 수 있게 된다. 또 가사노동자는 근로자로 인정받아 4대보험과 최저임금 등 노동법이 보장하는 근로조건을 보장받는다.
국회에서는 2012년 ‘가사근로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협약 제출 촉구 결의안’을 가결한 이후 2013년과 2016년 가사근로자에 대한 근로개선 법안이 발의됐고, 고용노동부도 실태조사 및 입법연구 등을 추진하며 입법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직 법률 제정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좋은 일자리 창출’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정하면서 법안 제정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가사근로자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을 입법 예고했다. 당정협의를 거쳐 법안을 국회에서 병합해 논의한 뒤 올해 안에 통과시킬 방침이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도 2012년 총선 당시 가사노동자를 근로자에 포함시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내용을 여성정책 10대 과제 중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다만 정책추진 과정에서 예산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정부가 가사근로자 전체에 사회보험을 지원할 경우 5년 간 1조8972억원의 추가 재정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전국가정관리사협회, 한국여성노동자회 관계자들이 26일 국회에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대한 법률안 입법 발의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