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해곤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발생하는 '갑질'에 대한 대책을 발표한 지 한달 만에 이번엔 유통업계의 '갑을관계'로 눈을 돌렸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취임 이후 유통과 가맹, 대리점, 하도급 등 4대 분야에서 '을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지난번 가맹점 보호에 이어 이번에는 대형유통업체와 중소 납품업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갑질' 대책을 들고나온 것이다.
14일 공정위가 발표한 유통분야 불공정거래 근절대책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현행 대규모유통업법의 사각지대를 최대한 보완하고, 대형유통업체로부터 소상공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 그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감시를 강화하는 한편 업계가 자율적으로 협력 방안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유통분야의 불공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유통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며 "당장 공정위가 할 수 있는 계획들을 크게 3가지 전략, 15개 세부 과제로 정리했다"고 말했다. 법 개정을 추진함과 동시에 공정위의 법 집행 강화를 통해 대규모유통업체들의 갑질을 막고, 소상공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대규모유통업법 개선…반사회적 행위 처벌 강화 추진
대형마트 등에 물건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경우 판촉비를 떠넘기거나 판촉사원을 억지로 보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팔리지 않은 상품을 회수하라는 요구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줘야 해 재고비용까지 떠안아야 한다.
실제로 2015년 이후 유통업계에서 공정위로 신고가 접수된 불공정행위의 30%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납품업체의 입장에서는 거래를 계속하기 위해 이를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이에 공정위는 ▲상품대금 부당감액 ▲부당반품 ▲납품업체 종업원 부당사용 ▲보복행위 등 4가지 불공정 행위의 경우 대형유통업체에 3배의 배상책임을 물릴 수 있도록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을 추진한다.
김 위원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은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가중처벌이지만 현행 실손해배상만으로는 피해업체 구제가 쉽지 않다"며 "대규모유통업법 가운데 민사적 구제 수단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현행 30~70% 수준인 대형 유통업체의 법 위반으로 인한 과징금 부과기준율을 60~140%까지 인상시키는 고시 개정도 준비 중이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가 납품업체의 직원을 부당하게 사용한 인건비가 3000만원이라고 가정하면 과징금은 2배인 6000만원, 손해배상액은 이 과징금의 3배인 1억80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복합쇼핑몰·아울렛 입점업체도 대규모유통업법 적용
'매장 임대업자'로 등록돼 대규모유통업법에서 제외되는 복합쇼핑몰과 아울렛 입점업체도 법의 테두리 안으로 포함된다. 지금까지 복합쇼핑몰과 아울렛에 입점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대규모유통업법의 적용을 받지 못해 임대료가 높아지거나 판촉행위에 직원들이 동원되더라도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이에공정위는 '상품판매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임대업자'를 대규모유통업법 적용대상으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추진키로 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백화점과 TV홈쇼핑 분야에 한정됐던 판매수수료 공개제도를 대형마트와 온라인쇼핑몰까지 확대 적용한다. 판매수수료를 공개할 경우 납품업체가 대형 유통업체와의 계약 과정에서 보다 공정한 수수료율을 결정할 수 있을 것으로 공정위는 기대하고 있다.
또 법 개정을 통해 대형 유통업체와 납품업체와의 거래에서 판매수수료 외에도 판매장려금을 비롯한 각종 비용공제 등 주요 거래 조건을 공시하는 제도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납품업체의 종업원을 사용할 경우 대형 유통업체들도 인건비를 의무분담하도록 하고, 최저임금 인상 등 공급원가가 변동될 경우 납품가격에도 이를 반영토록 했다.
김 위원장은 "대규모유통업법이 만들어졌을 당시 상상도 하지 못한 불공정행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며 "납품업체 직원 사용이나 재고 떠넘기기 등 비정상적 거래로 부터 중소상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통업이 워낙 광범위하고 하나의 통일된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아 일률적인 감시와 제재가 힘든 만큼 공정위는 중점 개선 분야를 정해 거래 실태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올해 가전·미용 전문점에 이어 내년에는 TV홈쇼핑과 기업형슈퍼마켓(SSM)을 대상으로 실태 점검에 나선다.
김 위원장은 "이 같은 대책을 통해 유통분야에서 불공정거래가 없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프랜차이즈 업계가 10월까지 상생협력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듯이 무엇보다 업계의 자율적인 상생협력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이해곤 기자 pinvol197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