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영 정경부 기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나선 애국지사들이 겪은 고초를 다룬 이야기는 이제 식상할 정도다.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꼽히는 우당 이회영 일가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백사 이항복 이후 대대로 정승과 판서를 지낸 명문가 집안의 후손. 일제의 회유에도 여섯형제와 일가족 전체가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 이후 신민회 창립과 헤이그 특사 파견, 신흥무관학교 설립 등 국외 항일운동 전반에 관여’. 타협을 택한 대다수 사회지도층과 달리 고생길을 자초했건만 이회영 일가의 이후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망명생활 중 가족들의 끼니를 걱정할 생활고를 겪었으며, 6형제 중 이시영(초대 대한민국 부통령 역임)을 제외한 다섯 명이 광복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회영 일가의 삶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지 못한데 대해 많은 이들이 품고 있는 아쉬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이 해방된 후에라도 반듯한 삶을 살아야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난 2015년 <한국일보>가 해방 70주년을 맞아 광복회 회원 6831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2%가 월 소득 200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50만원 미만도 10.3%였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세간의 풍문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광복 72주년 경축사에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이 사라져야 한다”며 “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의 처지가 해방 후에도 달라지지 않더라는 경험이 불의와의 타협을 정당화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흥사단이 지난 2015년 말 조사·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억원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는 물음에 응답 고교생의 56%가 "그렇다"고 답했다. 2012년(44%), 2013년(47%)에 비해 “그렇다”는 답이 높아진 것이다. 몇 년 전 한 방송사가 방영한 다큐멘터리에서 “많은 돈이 생긴다 해도 잘못된 행동은 하지 않겠다”던 한 서양학생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그 결과는 돈으로 귀결된다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상식’이 친일 부역자와 독립운동가 집단의 엇갈린 운명에서 비롯됐다면 과장일까.
독립운동가 3대까지 예우와 생활안정 같은 대책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잘못된 기회주의 풍토를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기 때문이다.
최한영 정경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