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살충제 계란에 떨고있는 대한민국

입력 : 2017-08-23 오전 6:00:00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대한민국이 난리법석이다. 국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정부는 우왕좌왕이다. 엄청난 충격에 공포심을 넘어 분노까지 양산되고 있다. 컨트롤 타워가 무너진 것처럼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한반도에 긴장 상태를 불러온 북한의 ICBM 발사나 국지적 도발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다. 폭염이 지나간 올해 8월 국민들로 하여금 먹거리에 대한 공포심을 야기한 ‘살충제 계란’ 이야기다. 지난 8월 초 북한이 미국령인 괌을 겨냥한 포위 포격론이 나올 때도 이 정도로 국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지는 않았다. 안보 불감증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차분한 대응이 오히려 성숙된 시민의식으로 인식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거의 매일 먹게 되는 계란 문제는 국민들에게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북핵보다 더 치명적인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우선 어디서부터 어느 정도로 심각한 사태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관계 당국에서 선제적으로 계란의 살충제 성분을 검사한 것이 아니라 유럽에서 큰 문제가 되자 뒤늦게 밝혀진 결과다. 조사를 통해 밝혀질 내용이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아니 수십 전부터 살충제 성분이 포함된 계란을 먹고 있었던 셈이다. 다음으로는 국민들의 이해수준과는 동떨어진 설명에 따른 불안감이다. 정부의 발표와 언론에 도배되다시피 등장하는 피프로닐, 비펜트린 등의 살충제 성분은 국민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전문적인 개념이다. 그저 친환경 계란이라는 인증을 받았기에 안심하고 달걀을 구매한 국민들인데 지금 와서 온갖 화학성분을 동원해 설명하면 안심보다는 불안감이 앞선다. 게다가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살충제 성분의 유해성을 논하던 정부가 인체에 아무 해가 없으니 마음 놓고 먹으라고 한다면 이 호들갑을 떨었던 이유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살충제 계란’ 논란을 두고서 국민들의 눈살을 가장 찌푸리게 하는 장면은 정치권에서의 네 탓 내 탓 공방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지난 보수정권에서 양계 농가와 수집상 그리고 유통 과정에 대한 철저한 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야당에서는 정부의 무능한 대처와 식약처장의 비전문성을 공격하고 있다. 사회적인 파장이 될 만한 이슈가 등장하면 예외 없이 정치권은 책임을 서로 떠넘기며 근본적인 원인 해결을 외면해왔다. 이번 계란 파동을 되돌아보면 공직 사회의 무사안일과 적폐누적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장의 진실이 철저하게 가려진데 가장 큰 원인을 찾아야 한다. 계란의 생산과 유통 그리고 판매까지 표준 방식의 관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체계적이지 못했다. 난각(달걀 표면의 식별기호)코드마저 제각각 다르거나 아예 표시하지도 않아 소비자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친환경 인증체계도 전면적으로 손을 봐야 한다. 관련 공공기관의 퇴직자가 민간 인증기관에 취업해 친환경 인증을 남발한 점은 전형적인 적폐이고 ‘농피아’로 지적받는 무사안일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나 다름없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닭장에 가두어 키우는 바람에 진드기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양계 농가들의 볼멘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흙바닥에 진드기를 털어내며 넓은 양계장에서 활보하게 만드는 방식이 좋은 걸 왜 모르겠는가. 모든 양계장이 시도하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물론 사용 금지된 DDT 성분의 살충제를 사용하고 유해 살충제를 불법 판매한 업자들은 엄중한 법적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정확한 정보 파악, 단일화 된 설명 채널, 체계적인 사태 대응이 없으니 혼돈에 혼란으로 이어졌다.
 
‘살충제 계란’의 근본적인 대책은 이제 문재인 정부에 달렸다. 어떤 정책이든 정확한 진단, 체계적인 사전 예방 그리고 불법에 엄중 처벌이라는 선진국형 매뉴얼이 작동되어야 한다. 한 조사기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살충제 계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 대응을 매우 신뢰하는 국민 여론을 확인하게 된다. 여러 혼란에도 불구하고 사태 수습을 위한 노력에 대한 평가로 볼 수도 있다. 아니면 이번 사태의 원인을 이전 정부의 적폐로 보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으로도 풀이된다. 그렇지만 다른 이유보다 국민들의 이런 호의적인 평가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높은 지지율 때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칫 정부의 대응 능력보다는 문 대통령을 향한 높은 지지가 응답의 기준이 되어버렸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북핵은 마치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계란 파동은 나와 가족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북핵보다 ‘살충제 계란’ 파동이 더 치명적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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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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