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투표권이 없는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경선에서 투표했더라도 이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공직선거법 위반·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일 밝혔다.
이씨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이 진행 중이던 지난 2012년 3월 A씨 명의로 온라인 투표시스템에 접속하고, A씨 명의로 가입해 자신이 사용 중인 휴대전화로 전송받은 인증번호를 입력한 후 자신이 지지하는 비례대표 후보에 투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는 자신의 직장에서 근무하다 퇴사한 전 직장동료 A씨의 인적사항으로 통합진보당 당원으로 가입해 당비를 내면서 선거권을 획득했다.
1심 재판부는 "이씨는 자신의 행위로 통합진보당 경선관리위원회의 당내경선 관리업무가 방해된다는 점에 대해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도 이를 위반하는 행위를 했다"며 이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온라인 투표는 당원명부에 등록된 휴대전화로 전송받은 인증번호를 입력하도록 하는 등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는 이유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거나 짐작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A씨 명의를 도용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씨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A씨는 투표권이 없는 자이고, 자신의 명의로 이 사건 당내경선에서 투표한다는 점에 대한 인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이씨의 행위는 당내경선의 자유를 방해할 추상적인 위험을 초래한 정도에 불과하다"며 "이를 A씨의 당내경선에서 투표하지 않을 자유 그 자체를 직접 방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사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1심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A씨는 통합진보당 당원이 아니므로 애초부터 이 사건 당내경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지위에 있지 않았다"며 "검사는 A씨의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자유가 방해받았다고 주장하나,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자유는 A씨에게 투표권이 있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검사의 위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