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초가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며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2일 저녁 7시20분, 정확히 그의 공연 시작 시간이 되자 무대 전체가 암전되더니 블랙홀을 형상화한 로고가 반짝인다. 그 아래로는 마치 우주를 연상케 하는 갈라진 백색의 조명들이 명멸하며 빛을 뿜어댄다. 이윽고 ‘인터넷 전쟁’의 전주가 울려 퍼지며 공연장 천장에서 정체모를 거대한 역삼각형의 물체가 낙하했다.
서태지와 방탄소년단. 사진/서태지컴퍼니
“컴온!” 우렁찬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삼각형이 갈라지며 등장한 서태지는 신스 소리를 강하게 재편곡한 밴드버전 ‘내 모든 것’, 8집 수록곡 ‘줄리엣’을 연달아 부르며 25주년 공연의 포문을 신명나게 열어 젖혔다.
이어서는 무대 앞 전면에 배치된 거대한 투명 스크린이 양쪽으로 개폐되면서 시간을 1990년대로 되감았다. “여러분, 랩송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지금 10대들의 우상으로 떠오르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약간은 촌스러운 90년대 성우의 발성이 울려퍼지며 ‘난 알아요’의 전주가 흘러 나왔다. 완벽한 그때 그 시절의 느낌이 고스란히 재현되자 관객들은 일제히 함성을 쏟아내며 열광하기 시작한다.
그때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난 알아요!” 방탄소년단의 랩몬스터, 슈가와 함께 등장한 서태지는 ‘회오리 춤’을 선보이면서 랩을 읊기 시작했다. 무려 솔로 활동을 한 후 처음이었다. 그때 그 시절을 그대로 재현한 퍼포먼스에 어떤 관객들은 웃고, 어떤 관객들은 글썽였다.
이어서는 지민, 제이홉과 함께 ‘이 밤이 깊어 가지만’과 ‘환상 속의 그대’를, 정국과 뷔와 함께 ‘하여가’를, 진, 지민과 함께 ‘너에게’를 불렀다. 특히 ‘이 밤이 깊어 가지만’에서는 땀을 닦는 과거의 안무를, 하여가에서는 음원에서 사용된 태평소의 라이브 연주를 보여주기도 했다.
서태지와 방탄소년단. 사진/서태지컴퍼니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모두가 막혀 버린 이 시커먼 교실 속에서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너희들은 인식하는가?… 이 시커먼 교실 속에서 너희들의 미래는 점점, 점점 좁아져만 가고 있는데”
과거 ‘95 다른 하늘이 열리고’ 콘서트 당시 ‘교실이데아’에 앞서 일장 연설을 했던 모습까지그대로 복원되자 관객들은 향수에 더 깊게 젖어들었다. 서태지는 검은 옷 차림으로 제단 앞에 서서 그때처럼 똑같이 연설을 했고 이어 교실이데아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나온 방탄소년단 일곱 멤버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말미에는 LED에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족해/ 족해 내 사투로 내가 늘어놓을래” 가사가 그때처럼 떴다. 관객들도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똑같이 따라 부르며 시간을 함께 되감았다.
또 방탄소년단과 함께 ‘컴백홈’ 무대까지 완벽히 재현해 낸 그는 방탄 멤버들과 친밀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멤버들이 “관객분들도 함께 춤 추고 지금 장난 아닌 것 같아요”, “너무 좋은데요”라 하자 그는 주먹을 맞부딪히거나 어깨동무를 하며 애정을 드러냈다.
아이들 시절의 공연 도중 서태지는 관객들에게 “오랜만이네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여러분 덕분에 25주년이 성대한 것 같습니다”라며 “음악 하나로 이 자리에 같이 서 있을 수 있는 게 기쁘고 원하는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고 말했다.
서태지의 '굿바이' 라이브 도중 관객들이 핸드폰 불빛으로 화답하고 있다. 사진/서태지컴퍼니
방탄소년단과의 무대 이후에는 4집의 ‘필승’과 ‘굿바이’를 부르며 아이들 시절의 대미를 장식했다. 필승 때는 “당시 게릴라 공연을 펼쳤던 것처럼 2, 3층 객석에 깜짝 나타나 노래를 할까 했었지만 기술이 여의치 않았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고 굿바이를 부르기 전에는 “이별에 대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만든 음악인데 오늘 이 자리에서 마음을 전하고자 처음으로 불러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진심이 마이크를 통해 울리자 3만5000여명의 팬들은 일제히 핸드폰 불빛을 밝히며 화답했다. 노래를 마친뒤 무대 밑으로 그가 내려간 후엔 아이들 시절을 연상케하는 그의 감성 어린 편지 형식의 글이 LED에 떴다.
“그런 상상을 해봤어. 우리가 가장 뜨거웠던 때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하는” 그의 진심이 빚어낸 이번 공연이 그렇게 찬란하고 아름답게 흘러갔다. 우리들만의 추억을 되새기며. 그래, 그때 정말 뜨거웠지, 우리 모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