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에도 통상임금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구성항목이 ‘누더기’에 가까운 한국식 임금체계가 고착화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정부도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통상임금의 기준·범위를 명확히 함과 동시에, 임금체계를 단순화시키는 방향으로 기업들의 임금체계 개편을 지원할 방침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통상임금은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소정노동에 따른 금품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사업체별 임금 구성항목이 많게는 100여개에 달해,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에도 불구하고 특정 항목의 통상임금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임금은 기본급과 상여금, 제수당으로 구성된다. 다시 상여금은 정기상여금과 변동상여금으로, 제수당은 기술·자격수당과 직급·직책수당, 연구·활동수당, 초과·연차수당 등으로 나뉜다. 구성이 보다 복잡한 쪽은 제수당이다. 기본급 성격의 기술·자격수당과 직급·직책수당, 소정노동 외 노동의 대가인 초과·연차수당, 복리후생 성격의 교통비·식비 등이 혼재돼 있다.
노사 갈등은 주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통상임금은 초과(연장·야간·휴일)수당과 연차수당 등의 기준이 되는데, 대법원 판결 전까진 상여금과 제수당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려는 기업과 포함시키려는 노동조합 간 갈등이 이어졌다. 이후에도 일부 하급심에서 대법원과 다른 판단이 나오면서 현장의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100인 이상 기업만 115곳에 달한다.
임금 구성항목이 복잡해진 것은 기업의 인건비 절감 목적과 노사 단체협약 관행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김동배 인천대 경영대학 교수는 “현대차의 경우, 예전엔 노조에서 조합원들한테 임금을 설명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엔 노조도, 인사팀도 설명을 못 한다고 한다”며 “수당이 얼마나 누더기처럼 붙어 있으면 월급을 주는 사람은 왜 주는지, 받는 사람은 왜 받는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본급 인상으로 갔어야 할 부분이 매년 새로운 수당으로 신설됐기 때문”이라며 “기본급을 묶어두려는 기업과 임금총액을 키우려는 노조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수당을 제외하고 임금인상률을 산정하는 정부의 허술한 규제도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상여금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소 다르다. 1960년대까지 상여금은 성과에 따른 이익 배분적 성격이 강했으나, 1969년 고용노동부의 전신인 노동청의 예규로 평균임금에 포함되면서 후불임금적 성격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 비중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이 포괄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으나, 최근 들어선 하급심마다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통상임금의 기준과 범위가 법률로 명확하게 정해지면 통상임금의 불확실성을 둘러싼 노사 간 갈등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통상임금 법제화가 곧 임금 구성항목 단순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만큼, 중·장기적으론 사업체별 임금체계 개편도 불가피하다.
고용부 관계자는 “선진형 임금체계일수록 구성항목이 단순하다. 통상임금의 기준이 명확해지면 그 기준에 따라 임금체계를 단순하게 바꾸는 게 기본적인 정책 방향”이라고 밝혔다.
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이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일부 승소한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김성락 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자동차지부 지부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법원은 노동자 2만7424명이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낸 1조926억원의 임금 청구 소송에서 "2011년 사건의 노동자 2만7000여명에게 원금 3126억원과 이자 1097억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사진/뉴시스
세종=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