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재벌 개혁안을 설명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재벌집단의 친족분리 기업들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꼼수도 규제 대상이 된다. 각 그룹 총수일가가 3·4세대로 확대되면서 친족분리 그룹들의 등장 가능성도 높아졌다. 이에, 규제 사각지대로 꼽히는 친족기업들 간의 일감몰아주기가 만연하는 것을 사전에 적극 차단하겠다는 게 공정거래위원회의 의지다. 다만, 이번 조치는 새롭게 계열분리하는 기업들에게만 해당돼 기존 그룹들의 긴장감은 덜하다.
앞으로 대기업집단에서 계열분리된 친족 기업은 일정 기간 기존 집단과의 거래 내역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공정위는 제도 개선안에 대한 재계 의견 수렴을 거쳐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에 착수, 내년 대기업집단 지정 이전에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계열분리를 통해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제도 맹점을 보완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사례로는 유수홀딩스가 지목된다. 최은영 회장의 계열분리를 놓고 일감몰아주기 제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시각이 있다. 공정위가 내부거래 비율이 높았던 유수홀딩스를 규제 대상으로 지정했고, 처벌을 면하기 위해 계열분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한진해운 몰락의 책임이 있는 최 회장은 그룹 알짜회사들을 가지고 딴살림을 차렸다. 그러면서 사태 책임에서는 발을 빼 비판 여론에 직면했다. 당시 그룹에서 가져온 싸이버로지텍 등은 한진해운과의 거래 물량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는 한진해운이 파산해 모그룹과의 거래 내역은 확인되지 않는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한진해운 파산 후 유수홀딩스 측과의 거래는 단절됐다"고 말했다.
친인척 기업들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회피 논란은 다수 재벌집단에서 발견되는 해묵은 문제다. 삼성도 삼성전자가 이건희 회장의 친족기업인 알머스(구 영보엔지니어링)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의혹이 일었었다. 2012년 공정위가 일감몰아주기 의혹에 대한 조사에 나섰지만, 별다른 제재 없이 친족 분리를 승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 회장의 인척기업인 보광그룹 계열사들도 삼성전자 일감몰아주기 수혜를 받았다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현대차를 비롯한 범현대가도 잦은 논란의 대상이다. 현대제철은 현대중공업에 대한 공급물량이 높은 편으로, 이같은 의심을 낳았다. 후판(선박용) 공급에서 포스코의 비중이 가장 높았지만, 현대제철이 후판 생산을 늘려 비중을 키우면서 의혹도 계속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오일뱅크와 2013년 원유 장기운송계약을 체결해 지원성 거래 의혹이 일었다. 현대그룹은 계열사가 친족회사에 일감몰아주기 부당거래를 한 혐의로 2015년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등의 처벌을 받았다.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의 구내식당을 현대백화점 계열사가 맡고 있는 것도 중소기업 사업영역을 빼앗는 행태로 문제시된다.
LG그룹의 친족기업인 희성전자도 모그룹의 지원을 받아 급성장해 사회적 시선이 곱지 못하다. 희성전자는 구본무 회장의 동생들이 주요 주주에 올라 있다. 구 회장의 양자인 구광모 LG 상무는 희성전자의 주식을 팔아 LG 지분을 늘렸다.
이 같은 친인척 기업 간 거래는 그러나 의무공시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때문에 친족기업 간 거래 공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적지 않았다. 공정위가 이번에 개선 방향을 발표했지만 이 또한 신규 계열분리된 친족기업에만 해당돼 기존 의혹 사례를 파헤치긴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내부거래 비중 등 구체적 가이드라인도 포함되지 않은 원론적인 내용이라 당장 파장을 분석하기 어렵다는 게 재계의 주된 반응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지분 규제를 강화한다는 얘기가 많은데, 그것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열분리를 이용하는지 지켜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고 해석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