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 편편)한번 이겼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라

입력 : 2017-10-25 오전 6:00:00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취소여부를 둘러싼 법적공방이 일단 끝났다.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함종식 부장판사)는 삼성물산의 옛 주주였던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낸 합병무효 청구를 기각했다. 2년 이상 끌었던 합병의 적법성에 대한 논란에서 삼성이 승리한 것이다. 재판부는 "삼성물산 합병에 총수의 지배력 강화 목적이 수반됐다고 해서 합병 목적이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합병 비율이 주주들에게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어느 정도 예상된 판결이다. 합병 후 2년 넘게 흐른 지금 와서 취소하기는 쉽지 않다. 재벌의 무리한 경영조치를 사법당국이 뒤늦게라도 바로잡아 주기를 바라는 시각과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기대는 결국 깨졌다. 사실 삼성이 이번처럼 경영권 승계구도와 관련된 중요한 재판에서 패배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재벌의 힘이 법의 힘보다 강하다는 경험적 인식이 다시 입증된 셈이다. 이런 경험적 인식은 오랜 세월 재벌에 대한 재판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최근에 내려진 다른 판결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한항공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과징금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받아냈다. 공정위는 지난해 11월 계열사와의 내부 거래를 통해 총수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했다며 대한항공과 싸이버스카이, 유니컨버스에 총 14억3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을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조항에 따라 과징금이 부과된 첫 사례였다. 때문에 재판결과가 주목됐다. 그런데 법원은 공정위의 입증이 충분하지 않다고 ‘냉정하게’ 판단한 것이다. 채이배(국민의당) 의원이 지적했듯이 국회 입법과정에서 공정위의 입증부담을 완화하려고 세심하게 고려했지만, 법의 취지는 무시되고 말았다.
 
한화그룹이 한화S&C 주식 40만주를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동관씨(현 한화큐셀 전무)에게 매각한 것을 두고 제기된 주주대표소송의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법원은 한화의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창석 대법관)가 지난 12일 경제개혁연대와 한화 소액주주 2명이 김 회장과 한화 임직원을 상대로 낸 주주대표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한화는 2005년 6월 이사회를 열고 보유하던 한화S&C 주식 40만주(지분율 66.7%)를 김 회장 장남 동관씨에게 전량 매각하기로 했다. 이 결정으로 동관씨는 ‘제2의 삼성에버랜드’로 일컬어지는 한화S&C의 최대주주가 됐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거래였고 제값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렇듯 최근의 잇단 법원판결에서 재벌들이 모두 이겼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1심 형사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된 것이 유일한 예외였다. 법원의 판결들에 대한 비판은 거세다. 그렇다고 당장 어찌해볼 방법은 없다. 국법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 판결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승리한 재벌들은 지금쯤 승리의 기쁨에 젖어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 승리감에 취해 있어서는 안된다. 모든 것이 완결됐다고 판단해서도 곤란하다. 시장과 투자자나 소비자 및 국민의 진정한 심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심사가 더 무서운 법이다. 또 모종의 계기에 의해 앞으로 ‘정산’을 다시 하자는 요구가 제기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삼성은 과거 에버랜드나 삼성SDS 등 수많은 사건에서 사법의 칼날을 피해나갔다. 그러다가 2008년 삼성특검을 통해 중간정산을 요구받은 일이 있었다. 그 때의 정산은 물론 불완전하게 끝났다. 때문에 삼성의 경영체질은 바뀌지 않았다. 그 결과 지난해 불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또다시 정산요구에 직면하게 됐다. 정산작업은 지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뇌물죄 재판이라는 형태로 진행중이다. 그 최종결과는 지금 예측하기 어렵다. 다른 재벌들에게도 이런 불행한 정산과정이 앞으로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장차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과 시장의 건전한 상식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사법적인 제재를 일단 모면했다 해도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다. 스스로를 법정으로 내몰았던 요인을 해결하고 신뢰를 회복하지 않는 한. 그렇지 않으면 훗날 더 험한 정산 요구에 부딪히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차기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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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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