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유사 민주주의 국가다.” 몇 년 전 한 술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우리는 프랑스처럼 왕을 단두대에 보내지 않았고, 미국처럼 온 시민이 합심·단결해 무기를 들고 종주국을 몰아내지도 않았다. 국민들 자신이 국가 최고의 권위이자 권력이라는 것을 경험하거나 확인해보지 못했기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논리다.
대한민국 국민은 1년 전 당시 권력의 정점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무도한 정권에 성난 민심은 촛불을 들고 일어났고, 그 물결은 굽이굽이 파도쳐 청와대를 덮쳤다. 민심의 성난 파도는 구중궁궐 안에 칩거하던 권력자를 몰아냈다.
다른 민주주의 선진국들이 필수의례처럼 거친 일종의 성인식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드디어 제대로된 민주주의 국가가 됐을까. 일단 청와대의 주인은 바뀐 것이 확실하지만 바뀌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 모습을 보자. 국민들이 거리에서 요구했던 것, 정치·검찰·언론·경제 등의 개혁입법은 과거 여당의 몽니에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경제양극화와 사회 불평등은 여전하며 검찰과 언론개혁 역시 요원하다.
사실 우리는 이승만 독재체제를 무너뜨린 4·19혁명을 경험한 바 있다. 그러나 이승만이라는 상징만 미국 하와이로 쫓아 보냈을 뿐, 그 주위에서 기득권을 향유하던 구체제를 완벽히 정리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는 5·16 박정희 쿠데타와 유신독재체제 등장으로 이어졌다.
냉정하게 보면 오늘날 촛불혁명이 이룬 것은 청와대 권력의 조기 교체에 불과하다. 이명박·박근혜정권의 수혜자들이 9년이 넘는 기간 사회 곳곳에 구축해놓은 의회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 등은 아직도 철옹성처럼 막강하게 버티고 있다.
또한 여기에 촛불혁명에 기여했던 일부 인사와 단체들은 일종의 점령군 행세를 하는 듯하다. 촛불혁명이 성공했는데 왜 자신들이 꿈꿨던 세상이 바로 오지 않느냐고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마치 자신들이 촛불혁명의 대주주인양, 촛불민심 운운하며 주인이 바뀐 청와대에 청구서를 내밀며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 관철에만 목소리를 높힌다.
우리는 이미 김대중·노무현 두 민주정부 때 경험한 바 있다. 국민들이 마음을 합치면 IMF외환위기 같은 국난도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분열하면 역사를 퇴행하는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결국은 국민이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중심을 잡고 무소의 뿔처럼 개혁을 향해 꿋꿋이 가야한다. 정치권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잘 듣고 겸허하게 딱 반 발짝만 앞서 길을 이끌어야한다.
촛불혁명 1년, 잔치는 아직 이르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