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척결' 가시밭길 걷는 서훈 원장·문무일 총장

청춘 바친 조직에 칼 들이대는 처지…먼저 간 부하 빈소에서도 '죄인'

입력 : 2017-11-09 오전 8:51:46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지난 7일 저녁. 고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 빈소 밖으로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문무일 검찰총장 이름의 조화가 쫓겨나 있었다. 선봉에서 적폐청산의 칼을 든 서 원장과 문 총장의 지금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서 원장과 문 총장의 이런 숙명은 임명이 내정되면서 부터 예정돼 있었다. 조직에 대한 자긍심에 있어서 둘 째 가라면 서러울 국정원과 검찰의 수장으로, ‘적폐’의 멍에를 짊어 맨 각자의 조직과 부하들에게 칼을 겨눠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후배들로부터 무한한 신망과 존경을 받고 있어 이런 숙명은 더욱 가혹했다.
 
서 원장은 1980년 국정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입사했다. 그의 평생을 국정원과 함께 한 셈이다. 그만큼 그의 국정원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는 것이 그를 아는 사람들의 평가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 3차장을 역임한 뒤 먼 길을 돌아 국정원장으로 취임한 그는 한 가지 원칙을 강조했다고 한다. 잘못된 과거와 철저히 결별하고 국민이 원하는 기관으로 거듭나는 것이 시대적 사명이지만 과거 간부들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저지른 실무직원들은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동안 국정원은 대통령의 사조직으로 일했다. 그 책임은 너무 깊고도 무거웠다. 두 정권이 퇴사한 국정원 직원 모임인 양지회까지 권력 연장의 도구로 이용하면서 전직 국정원 요원들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런 탓에 서 원장은 전현직 국정원 직원 모두에게 원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양지회 일부 관계자들은 서 원장을 겨냥해 "원장 천년만년 할 것 같으냐. 조직 다 망가트리고 잘 되나 보자"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다닌다는 얘기도 들린다.
 
서 원장은 최근 문 총장에 앞서 부하를 먼저 보내면서 더욱 곤혹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정원 수사방해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모 변호사 유족이 사인 규명을 요구하면서 아직 장례일도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총장이 걷는 길도 험난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취임 후 내부 반발을 달래면서 ‘과거사 청산’ 등 자체 개혁을 서두르고, 외부 인사로 구성된 검찰개혁위원회를 통해 개혁추진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가중되는 수사의 부담과 ‘하명수사’, ‘정치검찰’이라는 공격은 문 총장을 끊임없이 잡아 흔들고 있다.
 
여기에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의 죽음으로, 쌓여 있던 내부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수사팀과 국정원 검사들을 내세워 ‘특수부 검사들의 공안검사 죽이기’ 프레임을 굳혀가고 있다.
 
문 총장의 이런 처지는 지난 7일 변 검사의 빈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참담한 심정으로 3시간 가까이 빈소에 머물렀지만 그를 보는 유족이나 일부 검사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이번 사건 수사팀은 물론 총 책임자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도 문 총장과 같은 죄인의 심정이다. 윤 지검장도 수사팀도 유족에게 불편함을 줄 것을 걱정해 조문도 하지 못했다. 특히 윤 지검장은 예전부터 유능하고 성품 좋았던 변 검사를 매우 아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폐 척결은 계속되고 있다. 문 총장은 8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장의 정기보고 자리에서 "사건 관계인들의 인권을 더욱 철저히 보장하고, 신속하게 수사를 진행해 진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라"고 윤 지검장에게 지시했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왼쪽)이 북한의 6차 핵실험과 관련한 보고를 위해 지난 9월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실로 향하고 있다. 오른쪽은 8일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는 문무일 검찰총장.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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