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20년 전 아시아 외환위기를 극복한 연대의 힘으로 평화, 번영, 발전의 동아시아 공동체 비전을 만들어내자”고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 정상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에게 제안했다.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 참석차 필리핀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마닐라 국제컨벤션센터(PICC)에서 열린 제20차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소위 ‘더불어 잘 사는, 사람 중심의 평화공동체’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20년 전 우리는 아시아 금융위기를 맞은 절박함으로 공동대응을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면서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났던 연대와 협력의 결과로, 오늘날 아세안과 한·일·중 13개국은 세계 경제규모의 30%를 넘는 경제권으로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 우리는 역내 구성원들의 삶을 지키고 돌보는 협력체로 한 단계 도약해야 한다”며 “20년 전 금융위기를 극복한 연대의 힘으로, 평화, 번영, 발전의 동아시아 공동체 비전을 만들자. 우리 앞에 놓인 보호 무역주의와 자국 중심주의, 양극화, 고령화, 기후변화 등 복합적인 도전들을 극복해 나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세안+3 정상회의 결과는 동아시아 공동체 번영을 내용으로 하는 ‘마닐라 선언’ 채택을 통해 구체화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사람 중심의 평화공동체 구상도 상당부분 내용에 포함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상회의를 마친 문 대통령은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와 각각 양자회담을 갖고 해당국과의 실질적 협력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리 총리와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양국이 식민지배 및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한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면서 “양국은 1975년 수교 이래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공통의 가치를 토대로 정치, 경제, 인적교류 등 다방면에서 돈독한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왔다”고 평가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양국 모두 신성장 동력 창출을 위한 혁신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싱가포르가 추진 중인 스마트네이션 이니셔티브 등을 통해 함께 협력해 나아가기를 희망한다”고 제안했다.
이에 리 총리는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정보통신기술분야 선진국인 한국과 협력의 여지가 많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양자 차원뿐만 아니라 한-아세안 차원에서도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고 화답했다.
이어진 메드베데프 총리와의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신북방정책’을 언급하고 “우리는 한-러 관계를 외교안보 정책상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며 “양국 간 전략적 협력이 한반도, 동북아는 물론 유라시아 대륙의 평화와 안정과 번영에 구심점이 되도록 노력해 나가자”고 밝혔다.
메드베데프 총리 역시 “우리는 한국과 똑같이 한반도의 평화에 깊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면서 문 대통령의 북한문제 평화적 해결에 대한 지지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경제 협력에서 문 대통령의 ‘9개 다리 구상’은 여러 분야의 협력을 추진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며 “우리 정부는 이 구상들을 현실화 하는 데 준비가 돼있다”고 적극 호응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은 러시아 총리와의 회담에서 극동 개발을 포함해 미래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키로 합의했다”면서 “현재 진행 중인 한-유라시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실무 협의를 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키로 했다”고 회담 결과를 전했다.
양자회담을 마친 문 대통령은 제12차 EAS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아세안 10개 회원국은 물론 한국을 비롯해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모두 18개국 정상이 참석하는 이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고, 역내 비전통적 안보위협, 지역 정세 등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대통령의 필리핀 공식일정은 이날 저녁 현지 동포 초청 만찬 간담회로 마무리된다. 이로써 문 대통령은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 7박8일 간 동남아 3개국 순방 일정을 마치고 15일 귀국길에 오른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전(현지시각) 필리핀 마닐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0차 ASEAN+3 정상회담에 참석해 각국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마닐라=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