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태양광이 미국의 통상압박에 직면하면서 험로가 예상된다. 현지 투자라는 ‘선물’을 제공한 삼성과 LG에 비해 대응력이 한참 뒤떨어진다는 우려도 나온다. 태양광 간판인 한화·OCI는 후계자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세이프가드 구제조치 판정이 있기까지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현지 우군의 도움을 받았다. 가전공장을 설립하는 현지 주지사와 상공부 장관 등이 세이프가드의 부당성을 주장해줬다. 그럼에도 결과는 나빴다. 한미FTA에 근거해 한국산 세탁기는 규제 대상에서 빠졌지만, 베트남 등지에서 만든 제품은 50%(120만대 초과 수입분 적용) ‘폭탄관세’에 노출됐다.
태양광 패널 업계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현지 우군 없이 정부 차원의 대응만 바라보는 실정이다. 개별기업은 물론 업계의 로비력도 뒤떨어진다. 세탁기와 달리 한국산 태양광 패널이 지난달 31일 구제조치 판정에서 규제 대상에 포함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세탁기와 태양광은 각각 내달 4일과 6일 미국통상대표부(USTR)의 공청회를 거쳐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게 된다. 미국의 과격해진 보호무역 기조에 따라 전망은 어둡다. 트럼프정부 들어 미 조사당국은 상당한 재량권을 얻었다. 조사대상 기업이 조금만 비협조적이어도 이를 근거로 강력한 규제를 적용할 수 있게 됐다. 업계는 물리적으로 답변이 불가능하거나, 자료 제출에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는 등 조사가 자의적이라고 불만을 쏟아낸다.
국내 태양광 대표주자인 한화와 OCI 모두 미국 의존도가 높다. 한화큐셀은 지난해 해외법인과의 거래 물량 중 70% 이상이 미국에서 발생했다. OCI는 3분기 누적 매출에서 미국 비중이 22% 정도로, 전년 동기(16%)보다 6%포인트 늘었다. 양사의 태양광 사업은 후계구도와도 맞물려 있다. 한화는 내달 10일 전후로 예측되는 임원인사에서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의 승진 여부가 관심 대상이다. 최근 동생인 동선씨의 잇단 폭행 물의로 3세 승계에 대한 여론은 나빠졌다. 승계 명분을 위해서라도 경영성과가 더욱 필요해졌다. OCI는 이수영 회장이 별세한 이후 이우현 사장이 갑작스럽게 회사를 물려받게 됐다. 연말 인사에서 부회장 승진 가능성이 대두되며, 역시 입지를 굳힐 성과가 필요하다.
한편, 철강산업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미국이 ‘국가 안보상 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하기 위해 사전조사를 실시했다. 이미 철강 수입에 상당한 반덤핑·상계관세를 적용해 연말까지 최종 결정을 보류한 상태다. 세탁기, 태양광에 이어 철강도 세이프가드 조치 가능성이 열려 있다.
전문가들은 업계가 대미 수출량을 조절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국내 태양광 업계는 미국의 중국산 태양광 관세 부과 이후 대미 수출을 대폭 늘렸다. 이에 따라 지난해 대미 수출량은 800% 이상 폭증했다. 세이프가드는 반덤핑이나 상계관세처럼 불법적 행위 판단 없이 수입량 급증만으로도 조치 가능하다. 반사이익에만 집중한 것이 결국 규제 빌미를 제공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