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정치 공작 의혹의 핵심 인물인 원세훈 전 원장이 28일 검찰에 출석했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수사팀(팀장 박찬호 2차장)은 이날 오후 원 전 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고 있다.
앞서 검찰은 지난 9월26일 원 전 원장을 소환해 특정범죄가중법 위반(국고손실) 혐의 등을 조사했다. 검찰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 등과 함께 외곽팀을 운영하면서 불법 선거운동, 정치관여 등 활동비 명목으로 국가 예산 총 52억5600만원 상당을 지급해 횡령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원 전 원장은 2011년 당시 추명호 국익전략실 팀장 등과 공모해 배우 문성근씨와 방송인 김미화씨 등 정부 비판 연예인 퇴출 공작, 반값 등록금 이슈 관련 야권 정치인 비난 공작 등을 기획하는 등 정치관여·명예훼손 혐의도 받고 있다. 또 2010년 3월부터 2011년 8월까지 방송 담당 수집관 활동을 벌이도록 지시한 혐의 등이 포함된다.
또 검찰은 이날 오전부터 국정원 댓글 수사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병찬 용산경찰서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 중이다. 김 서장은 서울지방경찰청 수사2계장으로 근무하던 2012년 12월 국정원 댓글에 대한 경찰 수사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23일 김 서장의 사무실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날 오전 9시44분쯤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자리에서 김 서장은 "수사상 기밀을 유출한 사실이 없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대하겠다"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과 통화한 사실에 대해서는 "업무상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서장은 이날 진술을 거부하는 등 검찰 조사에 협조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김 서장은 2013년 11월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청장의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국정원 직원과 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진술했다. 김 서장과 국정원 직원 안모씨는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가 오피스텔에서 대치하는 사건이 벌어진 직후인 2012년 12월11일부터 16일까지 총 50여 차례에 걸쳐 전화와 문자를 주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날도 국정원 등에 대한 수사에 대해 "정치적 수사가 아니고, 국가 정보기관 무력화와 관련 없는 사건"이라며 정치적 의도가 담겼다는 일부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에 드러난 사례를 헌법과 상식에 비춰 보면 건건이 반헌법적 범행이지 결코 정치적 사건이 아니란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며 "공개된 사실만을 보더라도 국가기관 소속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과 국민에 대한 봉사의 의무와 책임을 저버리고, 국민의 혈세인 국가 예산을 악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국민을 상대로 블랙리스트처럼 차별하고,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동향 조사처럼 뒷조사하고,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 인사 조처처럼 사찰하고, 어버이연합의 김대중 전 대통령 부관참시 퍼포먼스나 문성근씨 사무실 앞 시위처럼 협박하고, 연예인 김규리씨에 대한 행위처럼 인신공격하고,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문건처럼 흑색선전하고, 문성근씨·김여진씨 합성사진처럼 명예훼손하고, MBC 등 방송 장악 문건, 방송인 퇴출 공작처럼 직장에서 내쫓고, 연예인 출연 제재처럼 생계를 위협했다"며 사건을 세세하게 비판했다.
이어 "국정원 댓글 수사의 진실 규명 절차를 방해해 사법 절차를 방해하고, 대법원장 비난 광고와 시위, 판사 모의 화형식처럼 사법부를 비난하고, 명진 스님 허위사실 유포처럼 종교인을 공격하고, 여·야 정치인 허위사실 유포처럼 정치인을 공격하고, 사이버사령부 군무원 채용 시 차별처럼 국가 공무원 채용 시 차별하고, 노벨상 취소 청원처럼 국제관계에서 국격을 훼손하는 등 한 건, 한 건이 헌법의 대원칙과 책임을 무시하면서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고,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한 사건"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27일에도 "한국 현대 정치사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 정보 공작 정치와 군의 정치개입에 종지부를 찍고자 하는 것"이라며 정치 수사란 지적에 맞섰다. 그러면서 "정보 공작 정치의 종식과 군의 정치개입 근절은 정치적 입장을 불문하고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과제이고,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 비춰 특히 군의 정치개입은 훨씬 중대하고 가벌성이 높은 범행"이라며 "이같은 국기문란 중대범죄에 대한 수사를 법에 따라 진행하는 것일 뿐 결코 정치적인 사건에 대한 편향된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각종 정치개입 의혹에서 '정점'으로 의심받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