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시대, 거꾸로 가는 금융당국

가상화폐 등 소비자 피해 이유로 규제 강화…업계 "보신주의 비롯된 책임 회피"

입력 : 2017-12-07 오후 7:13:13
[뉴스토마토 양진영 기자] 금융권은 금융위원회가 최근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가상화폐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밝히면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증권사들이 준비하던 비트코인 관련 세미나도 전화 한통으로 모두 취소시켰다. 공문도,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금융위원회의 입장 표명으로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더불어 세계 몇 안되는 가상화폐 규제국이 됐다고 한탄한다.
 
그동안도 4차 산업혁명과 기술혁신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은 보수적인 편이었다. 산업은행을 4차산업 혁명 선도기관으로 지정하며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듯 했지만, 정작 블록체인, 가상통화, P2P, 소액해외송금업 등 대표적인 4차산업과 관련해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7월, 소액해외송금업의 시행을 십여일 가량을 앞두고 사업자의 법적 의무를 확대한다는 뒤늦은 방침으로 핀테크 업체들을 혼란에 빠트리기도 했다.
 
기존 전자금융업자 수준의 전산설비와 고객 보호를 규정한 약관 등과 함께 10억원 이상의 자본금, 부채비율은 200% 이하 유지 등 핀테크업체에 너무 높은 기준을 요구한 것이다.
 
때문에 외국환거래법 개정 후 소액 외화송금업 라이선스를 신청한 핀테크업체는 30여곳에 달했지만 인가를 받은 곳은 10곳도 채 안됐다. 
 
또 블록체인에 대해서 다른 정부부처와 엇갈린 행보를 보이며 관련 업체들에게 혼란을 주기도 했다.
 
지난 8월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블록체인 기술 세미나에서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블록체인에 대한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며 "제대로 알지 못해 설익은 정책들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미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9월 열린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TF 직후 "지분증권, 채무증권 등 증권발행 형식으로 가상통화를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에 대해서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더 나아가 지난 4일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TF’에서는 회의 주도권을 법무부에게 넘기면서 가상화폐를 금융투자가 아닌 범죄행위로 규정하며 규제의 강도를 높이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그동안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해 유사수신업소로 규정하되, 법적 대응은 하지 않고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입장을 지켜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금융위가 법무부에 책임을 넘기며 100만명 이상으로 알려진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감시대상으로 몰리고 말았다.
 
금융위는 이처럼 4차 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 보다 일부에서는 오히려 강화하는 단골이유로 ‘소비자 보호’를 꼽는다.
 
가상화폐의 경우 투기거래가 과열되고 이를 이용한 범죄가 증가해 국민들의 피해가 커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등에 대해서도 가상화폐의 피해를 이유로 들며 사기·투기 등으로 악용될 경우 강력한 제재를 예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금융위의 이같은 규제 정책이 보신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신산업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를 활용하기보다 규제 그물망을 씌워 책임을 피해가겠다는 의도라는 주장이다.
 
정부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A교수는 "몇 번이나 앵무새처럼 네거티브 규제가 아닌 포지티브 규제 방식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주장했지만 아무 반응도 없더라"며 "정부 담당자가 업계나 학자 등 전문가의 지식을 따라간다는 게 말이 안되는데, 피해를 막겠다고 규제부터 걸고 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는 본인 통장 거래라는 자율규제안을 내놓았으며 한국P2P금융협회도 자율규제 시스템을 만들어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민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게 업계가 스스로 소비자보호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사례다.
 
B가상화폐 업체 관계자는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면 이를 활용해 금융이 발전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주는 게 당국의 역할인데 거꾸로 가고 있다"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도 문제지만, 외양간 문을 막아버리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했다.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가상통화 거래에 관한 공청회에서 김진화 블록체인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진화 블록체인 공동대표, 이천표 서울대 명예교수, 정순섭 서울대 법과전문대학원 교수, 차현진 한국은행 결제국장, 한경수 위민 대표변호사,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 교수,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사진/뉴시스
 
양진영 기자 camp@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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