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용민 기자] 산업은행이 한국지엠 실사와 관련해 제너럴모터스(GM)에 자료를 요청하기 위한 ‘리스트’ 작성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지엠은 일단 산업은행의 실사에 대해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각종 의혹들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지엠의 성실한 자료 제출이 최우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19일 산업은행 관계자는 “현재 우리쪽에서 GM과 실무 협의를 하기 위해 자료 요청 등이 담긴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며 “특히 실사 범위를 정하기 위해 협의하고 있다. 리스트가 확정되면 GM에 넘길 예정이고, 그 다음에 그쪽에서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의혹을 받고 있는 고금리 대출 및 비정상적인 납품가격, 과도한 연구개발 비용 등에 대한 자료 요청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러한 부분들이 리스트에 포함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실사를 받게 될 한국지엠은 일단 산업은행과 정부의 실사 요구에 성실하게 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일단 산업은행 쪽에서 요구하는 자료가 어떤 것인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어,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민감한 자료 등은 제출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재무와 관련해 합리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내용들을 제시해야 되기 때문에 당연히 협력할 것”이라면서도 “산업은행이 확인하겠다는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아직 넘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할 수는 없고, 어떤 내용을 확인하겠다는 것인지 내용을 봐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정부와 산업은행 쪽에서 GM에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자료는 크게 3가지다. 먼저 한국지엠이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GM 본사에 차입금 2조4000억원에 대해 4620억원에 이르는 고금리 이자를 지불한 내용이다. 국내 완성차업체 차입금 이자율의 2배가 넘는 연 5%의 이자율이 적용됐다. 이와 관련해 지상욱 바른정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국내 완성차업체 차입금 평균 이자율(0∼3.51%)의 2배가 넘는 고금리”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한국지엠은 국내 은행권이 대출을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비정상적인 납품가격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지엠이 GM 본사로부터 비싼 가격에 부품을 들여와 반조립 형태로 만들어 수출할 때는 원가 수준의 싼 가격으로 GM 관계사들에 넘겼다는 의혹이다. 한국지엠의 매출원가율이 다른 완성차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90%를 넘겼다는 점에서 의혹이 힘을 얻고 있다. 아울러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누적적자보다 많은 1조8000억원 가량을 연구개발 비용으로 GM 본사에 지불한 것과 관련해서도 산업은행이 GM에 구체적인 자료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GM의 성실한 자료 제출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조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GM이 산업은행의 실사 요구를 성실하게 답변해야 상황이 진전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후 우리 정부도 이에 대해 충분히 검토를 해야 된다. 자기들이 저지른 일을 한국 정부에게 떠미는 식이 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재정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투명성이나 자구책에 대한 내용이 정확하게 나와야 된다”며 “GM이 구체적인 장부를 내놓지 않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GM이 트렉스와 스파크 등 경차를 우리나라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빨리 철수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런 내용들을 적극 활용해 GM에 대해 자료를 강력히 요구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3월 초에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GM의 글로벌 신차 배정 결과에 따라 향후 한국지엠의 운명이 갈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단 한국지엠에 신차가 배정돼야 미래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한국지엠에 대한 GM의 의지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지엠은 연간 20~30만대 규모의 신차 배정을 기대하고 있고, 한국지엠에 배정될 신차는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의 재정 지원 여부에 따라 한국지엠에 대한 GM의 신차 배정 여부가 결정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아울러 신차 배정 이후 실제 생산까지 2~3년이 걸린다는 점에서 그 사이 GM이 한국시장에서 철수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한국지엠 사태를 바라보면서 쌍용자동차 사태가 다시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쌍용차가 경영 악화로 외국 자본에 인수됐다가 경쟁력 악화와 경영난 가중으로 어려움에 처하고, 결국 정부에게 공을 떠넘겼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지엠 사태와 닮았다는 것이다.
2004년 쌍용차를 인수한 중국 상하이차는 2008년 철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우리정부에 지원을 요청했고, 요청이 거부당하자 결국 2009년 1월 쌍용차의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상하이차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기술을 확보했고, 핵심 연구원들을 중국 본사로 빼돌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GM도 한국지엠을 경영하면서 연구개발비 등으로 투자금 이상의 혜택을 얻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18일 전북 군산시청 청사에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철회하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뉴시스
최용민 기자 yongmin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