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앞두고 느닷없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한국지엠이 군산공장을 5월말까지 폐쇄하기로 했다는 지난 13일의 발표는 1차적으로 전북 군산시민들에게 비보다. 현재 군산 공장에는 약 2000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공장이 폐쇄되면 이들은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하고 만다. 130여개 협력업체 노동자 1만여명의 생존도 위협받게 된다. 지난해 7월 문닫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 이어 설상가상이다. 재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창원공장과 부평공장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두 공장의 가동상황은 아직 양호하다. 그러나 지엠본사의 결정에 따라서는 군산공장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다.
한국지엠은 GM이 다음 단계의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2월 말까지 이해관계자와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노동자 일자리를 볼모 삼아 한국정부와 노조에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거들고 나섰다.
GM은 지난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했다. 인수당시에는 한국지엠을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수출 허브로 삼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영실적이 악화돼 2014년 이후 2조원 이상의 적자를 냈다. 이 같은 경영 악화는 무엇보다 판매부진 때문이다. 국내시장에서는 존재감이 갈수록 약화돼 왔다. 해외시장에서는 GM본사 차원의 해외사업 재편 탓에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이다.
한국지엠의 적자누적이 노조의 과도한 요구와 낮은 생산성 때문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GM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다. 과도한 대출금 이자와 비싼 로열티, 너무 많은 GM측 임원 등 구조적인 고비용 요인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전국금속노조 한국지엠 군산지회의 김재홍 지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GM이 한국에 부품은 비싸게 팔고 완성차는 싸게 사가면서 적자를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한국지엠이 국내시장에서 판매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지 못하겠다. 악화되는 경영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한 시도라도 제대로 해봤는지 묻고 싶다. 군산공장 철수를 발표하기 직전 한국정부와 협의하는 몸짓을 보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진지하게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과연 있었던가? 한마디로 GM과 한국지엠의 태만 또는 도덕적 해이가 근본문제 아닌지 묻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는 설사 노조가 큰 양보를 한다 해도 어려운 것 아닐까. 사실 지금까지 도산한 국내외 기업들을 보면 노조 때문에 망한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경영진의 태만과 도덕적 해이, 능력 이상의 과도한 욕심을 부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GM도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에도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다가 간신히 살아남았다. GM이 최근 잇따라 단행했다는 해외사업 재편이나 군산공장을 폐쇄 결정도 사실은 무능함과 자신감 상실의 증거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우선은 GM의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합리적인 대책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노조도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과도한 요구를 삼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GM에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도덕적 힘도 생긴다. 최소한 폐쇄나 철수 결정의 빌미는 주지 말아야 한다.
어찌됐든 현재로서는 GM이 마음을 바꿔주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지만 낙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정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만약 한국지엠이 공장폐쇄를 강행한다면 군산지역을 고용재난지역으로 지정하는 등 긴급처방부터 내릴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 중장기적으로 지역경제를 살리는 특단의 대책이 제시돼야 한다. 지난해 가동 중단된 현대중공업 공장까지 함께 검토해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나아가서는 한국지엠의 전면적인 철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GM의 최근 움직임을 볼 때 먼 이야기만은 아닌 듯하다. 당장은 GM과의 협의를 통해 한국지엠의 안정적인 생산물량을 확보하고 미래발전 청사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GM본사 채권의 출자전환이나 이자삭감 등을 조건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할 수도 있다. 특히 이 기회에 GM본사와 한국지엠의 도덕적 태만이 근절돼야 한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GM이 철수를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는 복안이 있어야 하겠다.
차기태(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