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금융부 기자
카드업계에도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카드대란 전까지 정부는 세원 투명성 강화와 세수 확보를 목적으로 신용카드 사용을 적극 권장했다. 제도적으로는 카드 결제 거부를 금지하는 의무수납제 등을 만들어 카드 활성화를 뒷받침했다.
수수료율 결정에 있어선 업계의 자율성을 보장했다. 소액결제가 빈번한 영세 가맹점들은 결제 수수료보다 처리비용이 많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카드사들은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영세 가맹점에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했다. 그때에도 지금처럼 자영업자들의 반발은 심했지만 카드사들의 경영활동에 큰 걸림돌이 되진 않았다.
그런데 그 좋은 시절을 카드사들이 스스로 날려버렸다. 2000년대 초반 업계 1위였던 LG카드를 필두로 닥치는 대로 카드를 발급했다. 모델하우스 인근 떳다방처럼 대학가 등에 좌판이나 천막을 설치해놓고 오가는 학생과 행인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벌였다. 가입자의 소득, 상환능력 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렇게 LG카드는 카드사 최초로 1000만 고객을 유치했다. 2002년 말 카드사 자산은 68조원, 현금서비스 이용액은 357조4652억원에 달했는데, 이 기록은 10년 넘도록 깨지지 않았다.
이 같은 과잉경쟁의 결과는 처참했다. 소득이 없던 가입자들은 카드대금을 상환하지 못 해 신용불량자로 내몰렸고, 경영난을 겪던 LG카드는 2004년 신한카드에 통합됐다.
이후에도 카드업계에는 몇 차례 위기가 있었다. 모두 업계 스스로 자초한 위기였다. 2012년까지 카드사들은 연 금리가 20~30%에 달하는 카드대출과 리볼빙 확대에 열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카드사와 카드사의 금융상품에는 ‘약탈적’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여기에 2014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터지면서 카드사들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지금도 카드업계의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연일 중소·영세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율 인하를 압박하고 있고,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과거와 같은 이자 장사도 쉽지 않게 됐다.
요즘 카드업계는 그야말로 울상이다. ‘이러다 망하겠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위기의식 때문인지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여신금융협회는 카드업계와 함께 의무수납제의 적정성을 검토한다고 한다. 각 카드사의 노동조합들도 초대형 가맹점에 대한 수수료 하한 규정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 시점의 문제만 떼어놓고 보자면 업계의 주장이 타당한 면도 있다. 남발하는 소액결제로 수수료 역마진이 발생하는 것도, 소상공인 부담 완화를 목적으로 한 수수료율 인하가 대형 가맹점의 수수료율 인하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과거 약탈적 영업에서 비롯된, 일종의 괘씸죄가 아닐까 싶다. 지금과 같은 주장을 카드사들이 승승장구하던 1990년대에 했다면 오히려 통 큰 양보로 비쳤을지 모르지만,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합리적인 주장을 해봐야 밥그릇 사수로 매도되기 십상이다.
오히려 밥그릇을 지킬 명분을 만들기보단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게, 약탈이 아닌 새 먹거리를 고민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현재 업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카드사들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에, 그 책임도 카드사들이 지는 게 맞다.
김지영 금융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