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바보야 문제는 '드루킹' 아닌 '경제'야

입력 : 2018-04-19 오전 6:00:00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우리 사회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던 영화 중에 ‘더 킹’이란 작품이 있다. 한류 스타들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기 스타들이 즐비하게 등장하는 영화이기도 했다. 멋진 배우들을 보는 재미와 스토리에 빠지는 몰입감이 충분한 영화였다. 그렇지만 더 주목했던 이유는 영화의 배경이었다. 우리 사회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검찰 조직의 숨겨진 치부를 들추는 내용이다. 물론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검찰 조직에 몸담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이 영화 속의 인물과 비슷할 리 만무하다. 영화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므로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아니 많이 달라야 한다. 실제가 그렇다면 영화 속의 가상 세계와 현실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더 킹’에 등장하는 검찰은 실제 검찰 조직이라기보다 우리 사회의 권력을 묘사한다. 정치권과 줄을 대고 감히 상상하기 힘든 범죄 조직과 결탁하기까지 한다.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권력은 또 다른 권력을 탐닉한다. 영화는 가상의 세계라고 믿고 싶지만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되돌아보면 영화 ‘더 킹’에서 나오는 장면들을 뛰어 넘는다. 현실이 영화인지 영화가 현실인지조차 분간하지 힘들 지경이다.
 
선거를 불과 채 60일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드루킹’ 논란이 우리 사회를 도배하고 있다. ‘킹(KING)’은 왕을 의미하는 것인데 인터넷 사이버 공간과 정치 주변부에서 권력의 중심을 호심탐탐 노렸던 인물의 최종 목표가 ‘왕’이었을까. 최고 권력자와 가까운 인물들과 접촉을 시도하고 인사 문제를 운운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가상의 정치 공간에서 자신의 주장과 세계관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집결시키고 이를 무기로 정치권에 줄을 대고 자신의 세를 과시했다니 이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스럽다. 영화 같지만 현실이었다. 시시비비는 경찰과 검찰 수사에서 가려져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지난 정권의 국정농단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숨겨진 민낯을 적나라하게 경험했던 국민들로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특정 정권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발탁이 되는 길을 선택받아야 마땅하다. 정당한 인사 절차를 거쳐 능력 있는 사람이 등용된다면 누가 비판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혁신과 청렴을 정권의 운명처럼 내건 현 정부마저 구태가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드루킹‘ 논란이야 수사로 밝혀질 사안이지만 신임 금융감독원장의 중도하차는 뼈아픈 대목이다. 인사는 만사라고 하는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검증으로 바로 밝혀질 결격 사유를 임명하고 나서 확인한다는 해명은 실망스럽다. 대한민국의 금융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금감원장의 거취를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결정할 일은 결코 아니다. 여야 대결 구도 속에서 흥정되어서는 더더욱 안 되는 자리다. 한 번 무너져도 바로 세우기 힘든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금융감독원은 두 번이나 수장이 무너졌고 기관의 이미지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다.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남북정상회담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4년간 지방정부를 책임질 선량을 뽑는 지방선거는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안보와 외교를 앞 다투어 논의하고 정책 대결을 펼쳐야 할 장이 ‘드루킹’ 게이트인지 스캔들인지에 놀아날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정치권은 ‘드루킹’ 논란으로 국회 빗장마저 걸어 잠글 태세다. 민생은 모조리 뒷전으로 물리고 ‘드루킹’ 진실 공방으로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식이다. ‘드루킹’ 의혹의 자초지종은 반드시 따져 물어야 마땅하다. 어물쩍 넘어갈 사안은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루킹’ 논란에 한국 사회가 마비되어서는 곤란하다. 증시는 연신 신기록 행진을 해왔지만 우리 경제의 근간을 보여주는 지표는 아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던 산업과 업종은 허리케인에 느릅나무 흔들리 듯 위태로운 상태다. 한국갤럽이 지난 10~12일 실시하고 13일 발표한 조사(전국1005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19%)에서 ‘앞으로 1년간 우리나라에 실업자가 현재에 비해 어떨지’ 물어본 결과 ‘현재에 비해 증가할 것’이라는 응답이 47%로 절반에 육박했다. ‘현재에 비해 감소할 것’이라는 의견은 21%에 그쳤다. 체감경기가 매우 나쁘다는 의미다. 물을 필요도 그리고 따질 필요도 없이 우리 사회 전반이 ‘드루킹’ 블랙홀에 빠질 기세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과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준비 소홀로 한국 경제의 빛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데 한심한 노릇이다. 92년 혜성같이 등장한 미국의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 자리를 거머쥔 비결은 국민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때 구호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다. 이제 이 구호를 국민들이 정치권에 던져야할 차례다. 바보야 문제는 ‘드루킹’이 아닌 ‘경제’야.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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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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