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전국 법원장들이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부의 형사고발과 수사의뢰는 부적절하다고 뜻을 모았다. 이번 사태의 핵심으로 떠오른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면서 우려를 표했다. 소장 판사들이 주도했던 강경기류가 한풀 꺾이는 모습이다.
법원장들은 7일 오전 10시부터 대법원 401호 대회의실에 모여 오후 5시25분까지 사법농단 사태 등 사법부 현안에 대해 간담회를 열었다. 통상 법원장 간담회는 법원행정처장이 주재한다. 그러나 안철상(사법연수원 15기) 법원행정처장이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단장이었던 점’을 이유로 모두에만 참석했다가 퇴장하고 간담회는 기관서열에 따라 성낙송 사법연수원장(14기)이 주재했다. 법원장들도 모두 동의했다.
이날 법원장들은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따른 형사상 조치 여부’와 ‘추가적인 문건 공개 여부’ 등 2가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지난달 31일 의정부지법 판사회의를 시작으로, 지방법원 단독판사들을 중심으로 한 평판사들과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을 중심으로 한 부장판사들도 이 두 쟁점에서 엇갈렸다. 소장파인 평판사들은 엄정수사와 문건 전면공개를, 중견파인 부장판사들은 수사 부적절 의견을 내는 대신 문건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입장을 유보했다.
법원장들은 우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대해서는 평판사나 부장판사들과 마찬가지로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 “사법행정권 남용행위가 법관의 독립과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였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그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상 조치에 대해서는 “형사상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한 특별조사단의 결론을 존중하며, 사법부에서 고발, 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합리적인 근거 없는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제기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며 국민 여론과는 정 반대의 입장을 나타냈다. 부수적 의견으로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개혁방안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뜻도 모았다. 법원장들은 이날 '추가 문건 공개 여부'에 대해서도 논의했지만, 그 논의 내용 등은 비공개에 붙이기로 결정했다. 법원장들은 이날 취합된 뜻을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전달했다.
법원장들의 이날 합의에 대해서는 법원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단독판사는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법원장들이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면서 “법원 내에서도 사태를 보는 온도차가 분명한 것 같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1호 판사로 불리고 있는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은 이번 전국법원장간담회 결과를 예견한 듯 전날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분들(고위법관들)은 법원을 대표하는 분들이 아니다. 상당수가 법원행정처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이고 상고법원에도 적극 찬성했었기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 감싸기 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의 대표성은 명실상부하게 각급 법원 판사회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라고 강조했다.
전국 법관대표회의는 오는 11일 열린다. 이날 회의에서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관한 전국법관대표회의 선언 의안’과 함께 ‘사법발전위원회에 대한 개선요구 의안’, ‘청와대의 판사 파면청원 결과통지에 대한 반대 및 재발방지를 위한 성명서 채택 의안’, ‘대법관 후보자 검증절차 개선 의안’, ‘사법발전위원회에 대한 개선요구 의안’ 등을 논의한다. 김 대법원장은 전국 법관대표회의 결과까지 모두 취합한 뒤 이달 하순쯤 이번 사태에 대한 처리안을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등과 관련한 전국법원장 간담회가 열린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참석한 법원장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