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설명하면서 진보인사의 대법원 진출 차단을 위해서라도 상고법원제도 도입이 절실하다고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다양성이라는 민주적 구성 요건을 지향해야 하는 대법원이 표면과는 달리 내부적으로 어떠한 기조를 유지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5일 추가 공개한 미공개 파일 중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VIP보고서’ 문건에는 “상고심 사건의 폭증으로 상고법원제 도입이 절박하다”면서 “상고법원 도입이 좌초되면 민변 등 진보세력이 대법원 증원론을 대안으로 내세우며 최고법원 입성을 시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VIP보고서' 중 일부. 자료/특별조사단
이 문건은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 대법관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설명된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 노동법의 거목이자 민변 사무총장 출신인 김선수 변호사는 2015년부터 지난 달 14일까지 총 5회나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다. 이 중 4번은 민변이 아닌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것이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정당해산심판 당시 통합진보당을 대리해 박근혜 정권 입장에서 볼 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실상은 대법원이 막고 있던 것이 이번 문건 공개로 드러난 셈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시절 법원행정처는 또 상고법원제를 탐탁지 않아 하는 박 전 대통령을 달래기 위해 박 전 대통령이 상고법원 구성에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보고 문건 중 ‘상고법원 판사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 부분에서, 법원행정처는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정해 대법관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부여하고 있는 헌법 104조 2항을 확대 해석해 이를 상고법원 판사 추천위원회 구성에 반영하겠다고 적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고법원 판사 임명에 대통령님 意中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라는 기준을 스스로 제시하고 추천위원회를 자문기구가 아닌 심의기구화 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추천위원회는 이른바 ‘친박’ 성향의 추천위원들로 구성되고, 그들이 추천하는 법관들이 상고법원 법관으로 임명되는 것이어서, 박 전 대통령이 재판에도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VIP보고서' 중 일부. 자료/특별조사단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