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조사로는 사법농단 해결 못 한다"

1년 전 이미 일선 판사들 제안…"때 놓쳐 더 나올 것 없어, 시간만 지연"

입력 : 2018-06-10 오후 6:39:52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사법농단(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태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국정조사가 급부상하고 있다. 사법권을 최종적으로 행사하는 기관이 사태의 당사자인 대법원이니만큼, 진상규명과 판단 과정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검찰과 법원 보다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게 해결을 맡기자는 제안이다.
 
국정조사는 헌법 61조에 정해진 국회의 권한이다. 국회로서는 부여된 대표권한을 행사해 국민의 신뢰를 져버린 사법부를 견제한다는 명분이 있다. 대법원 역시 ‘셀프 재판’이라는 또 다른 의혹을 남기느니 국민의 대표들로부터 조사를 받는 것이 떳떳할 수 있다.
 
게다가 국정조사는 수사나 재판과 달리 TV 등을 통해 생중계 할 수 있다. 전 국민이 배심원이 되는 셈이다. 국정조사 결과를 토대로 비위 법관에 대한 탄핵이나 수사의뢰 등 강력한 조치도 가능하다. 다만, 강제수사와는 다르기 때문에 전직 대법원장을 포함한 전·현직 고위 법관들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나오는 장면은 피할 수 있다.
 
현실적인 처리과정에서 고민되는 문제 중 상당부분이 해결된다. 사법농단 후속조치를 곧 결단해야 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묘수라면 묘수다.
 
국정조사가 언론 보도를 통해 대안으로 급부상 한 것은 지난 8일이다.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은 그날 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국회에서 나서서 진상규명을 하는 방법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민 법원장이 이 말을 꺼낸 것은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처리를 두고 현재 법원이 소장파와 노장파로 갈려 분열되고 있다는 여론과 우려에 대한 원론적 차원의 설명이었다”고 해명했다.
 
10일에는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현)가 휴일 중에도 성명을 내고 “사법부는 입법권, 행정권과 달리 선출되지 않은 권력임에도 헌법상 3권분립으로 그 권한을 보장 받고 있다”면서 “국정조사 또는 수사에 대한 법원 구성원의 합의와 협조를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변협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국정조사를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앞서서는 여당이 국정조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92차 정책조정회의 이번 사태를 ‘사법농단’으로 규정하고 국정조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정작 ‘국정조사 처방론’은 이미 1년 전, 이번 사태가 ‘재판 거래 의혹’으로 확산되기 전 단계인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 때 이미 법원 내부에서 일부 법관들에 의해 제기됐었다.
 
이들 가운데 서울중앙지법 민사40단독 남인수(사법연수원 32기) 판사는 2017년 7월4일 법원 내부 온라인 소통망인 코트넷에 글을 올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행정실) 해당 컴퓨터에 대한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방안을 오는 24일 2차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 안건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은 추가조사를 결정했다. 같은 해 11월20일 가동된 추가조사위원회는 올해 1월22일 "(비판적 법관)동향파악 문건 다수 발견"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자 김 대법원장은 추가조사위 조사결과에 대한 보완과 후속조치 마련을 위해 다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구성을 지시했다.
 
사태 초기인 지난해 국정조사를 제안했던 한 부장판사는 “당시 이미 법원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국정조사를 받는 것이 유일했다”면서 “그때 국정조사를 진행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야단맞았다면 지금과 같은 혼란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법원에 근무하는 또 다른 부장 판사는 “지금 김 대법원장이 국정조사를 대안으로 결정한다면, 결국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한 ‘제 식구 감싸기식 꼼수’로 비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도 “국정조사에서 특조단 조사결과 보다 더 밝혀질 것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때를 놓쳤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필연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벗어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많았다. 이들 중 한 고법 부장판사는 "대법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판사들은 너무나 잘 알겠지만, 특히 대법원 재판은 누군가의 의도대로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국민들은 언론을 통해 대법원이 결론을 내려놓고 재판하고 있다고 기정 사실화 하고 있지 않느냐"고 우려했다. 
 
김 대법원장은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결정된 안을 마지막으로 이번 주나 다음 주 중 이번 사태에 대한 최종 처리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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