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최근 인터넷(IP)TV 사업자들의 최대 고민은 미국의 미디어 공룡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이다. 넷플릭스는 전세계 가입자 1억2500만명(1분기 기준)을 보유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절대강자다. 특히 자체 제작하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넷플릭스의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넷플릭스는 1997년 DVD 배달업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2007년 온라인동영상 스트리밍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한 후 2013년부터 콘텐츠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하우스 오브 카드', '기묘한 이야기' 등을 히트시키며 콘텐츠 강자로 떠올랐다. 넷플릭스는 올해 콘텐츠 제작비용으로만 80억달러(약 9조640억원)를 쏟아 부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 3사의 미디어 매출 합계(3조5849억원)의 약 세 배에 가까운 금액이다.
천문학적 투자금액이 말해주듯 넷플릭스의 콘텐츠 파워는 날로 커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미국 TV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에미상의 올해 후보작에 112개의 작품을 올렸다. 지난 2015년 넷플릭스의 후보 작품은 34개로, 3년 만에 4배 가까이 급증했다. 지난 17년간 가장 많은 작품을 후보로 올렸던 유료 케이블 네트워크 HBO는 108개 작품이 후보작으로 선정돼 넷플릭스에 뒤졌다.
넷플릭스는 지난 2016년 5월 케이블TV 사업자 딜라이브의 셋톱박스에 탑재되며 한국에도 상륙했다. 2017년 11월에는 CJ헬로의 TV 기반 OTT ‘뷰잉’과도 손을 잡았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넷플릭스에서 개봉하며 국내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유재석과 이광수 등이 출연한 예능 '범인은 바로 너' 등도 제작하며 국내에서도 콘텐츠 강자로 부상했다.
올해 5월 LG유플러스가 이통3사 중 최초로 넷플릭스와 제휴하면서 경쟁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LG유플러스는 자사의 무제한 요금제에 가입하면 넷플릭스 3개월 이용권을 제공한다. LG유플러스는 이에 더해 자사의 IPTV에 넷플릭스를 탑재하는 것에 대해서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IPTV 시장 3위인 LG유플러스 입장에서는 글로벌 시장을 사실상 점령한 넷플릭스를 기반으로 차별화를 꾀해 경쟁자들을 추격하겠다는 전략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할 당시 통신사들도 제휴를 검토했지만 9대 1에 달하는 수익 배분 비율 탓에 성사되지 못했다"며 "LG유플러스가 그러한 수익 배분마저 감수하며 제휴를 한다면 경쟁사들로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넷플릭스 공세에 맞대응하기에는 콘텐츠 승부에서 절대적 열세다. SK브로드밴드(옥수수), KT(KT올레모바일), LG유플러스(비디오포털)는 각자의 OTT 플랫폼을 갖췄지만 대부분 기존 영화나 지상파 방송사, 종합편성채널의 예능 및 드라마 VOD(주문형비디오)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에는 최신 영화를 1~2일간 무료로 제공하는 경쟁을 펼치며 가입자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이러한 전략은 비용 부담 등으로 장기적으로 이어지기에는 어렵다는 게 일관된 평가다.
때문에 통신사들도 결국 질 좋은 자체 제작 콘텐츠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비용과 인력의 한계가 발목을 잡는다. 주어진 여건이 좋지 못하면서 임시방편으로 기존 방송사 등 미디어 업계에서 콘텐츠 제작자를 영입하는 경우도 늘었다. 또 외주 제작사의 콘텐츠를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춘 전문가도 차례로 영입하고 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당장 혼자의 힘만으로 다수의 콘텐츠를 생산해 내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면서 "우수한 콘텐츠 제작사와 손을 잡고, 콘텐츠 제작 업무를 할 수 있는 전문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상파 방송사들도 넷플릭스의 영역 확대에 우려로 가득하다. 콘텐츠와 플랫폼을 동시에 보유한 넷플릭스가 빠른 속도로 국내 콘텐츠 시장을 잠식, 결국 국내 사업자들이 고사할 것이라는 위기감에 직면했다. KBS와 MBC, SBS 등 주요 지상파 방송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지난달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넷플릭스 등 글로벌 미디어 기업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정부 개입을 촉구했다. 이에 이 위원장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방송사들도 고품질 콘텐츠 제작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는 원론적 답을 건네 지상파의 애만 태웠다.
반면 콘텐츠 제작사들은 넷플릭스라는 거대 플랫폼의 등장에 기대감을 보인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등에 불과한 국내 미디어 플랫폼 시장에서 새롭게 콘텐츠를 제작해 공급할 수 있는 플랫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와 제휴를 맺지 못하는 중소 제작사는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콘텐츠 제작사 대표는 "넷플릭스를 새로운 기회로 삼고 있는 제작사들이 많다보니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며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빚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