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이른바 '국정원 특수활동비 불법 수수' 및 20대 공천 불법개입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8년에 추징금 33억원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재판장 성창호)는 20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등손실 및 뇌물 혐의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 전 대통령에게 이같이 선고했다.
법원은 특활비 수수와 관련해 뇌물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지만 국고손실 혐의는 유죄로 보고 징역 6년과 추징금 33억원을 선고했다. 공천개입 혐의에 대해선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활비 사용목적은 국내·외 보안정보 수집 및 국가비밀 관련 보안업무 목적 등 국정원 직무 범위 내에서 한정적으로 집행돼야 한다”며 “국가기간 예산은 임의로 정해지는게 아니고 법률로 엄격하게 규정돼야 하는데 특활비 지급이 사업목적에 부합하는지 전혀 확인하지 않고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이유만으로 지급된 점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등 전직 국정원장들로부터 받은 특활비 36억5000만원 중 공모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2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국고 손실로 판단했다.
이어 “관련 실무자들 진술을 보면 국정원 자금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청와대로 오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이지, 뇌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뇌물 수수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또 “국정원장 임명에 대한 대가로 보답한다는 동기나 이유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청와대가 국정원에 자금을 공여할 만한 동기나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국정원은 특활비를 정기적으로 지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마찰이 있어 왔다"고 봤다. "공무원들 간에 금품수수가 뇌물로 인정되는 경우 상호간 청탁을 매개로 하는데 이 사건은 단순히 사업비를 지급한 것으로, 통상적인 경우와 다르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의 또 다른 혐의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20대 총선 이후 친박 인물을 당선시키려 한 박 전 대통령의 의식과 의지가 있었다고 보인다”며 “박 전 대통령이 개별 혐의를 인식하고 실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전체 여론조사와 경선운동을 공모했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도 새누리당 당원이어서 공직선거법 상 허용하는 통상적 정당활동 하나로 의견개진은 할 수 있다”면서도 “관여한 행위는 비박 배제와 친박 다수 당선이라는 뚜력한 목적을 가져 정당원으로 할 수 있는 의견 개진이 아니고, 선거법 상 불법 선거 운동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또 “현기환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은 박 전 대통령에게 친박 리스트 등 여론조사 자료를 보고하고 지시 받았다는 것을 부인했지만 실제 비서관, 행정관 다수가 여론조사 자료 작성·실행에 동원됐다”며 “10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해관계가 엮여 있는데 대통령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수행될 수 없다"며 박 전 대통령의 명시적, 묵시적 승인 하에 이뤄진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끝으로 “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으로부터 3년 동안 30억 원을 받아 국고 손실 규모가 크고, 무엇보다 엄정해야 할 국가예산 집행근간이 흔들렸다. 선거 개입 행위 역시 헌법적 책무에 반하고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한 행위로, 죄질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국정원 자금이 전달됐던 잘못된 관행이 유지되고 있어 박 전 대통령이 위법성을 크게 인식했을 것으로 보기 어렵고, 공천 당시 정치상황 논란을 타개하고 새누리당 협조와 지원을 받아 정책 추구목적에서 했다”며 양형 사유를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5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문고리 3인방과 공모해 전직 국정원장들에게서 총 36억 5000만원의 국정원 특활비 수수했다. 또 2016년 20대 총선 직전 새누리당 내 이른바 친박 인사들을 당선 가능성이 지역에 공천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총선 관련 자료 작성 및 선거운동 개입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2심 선고 직후 항소 의사를 밝혔다. 검찰은 “조윤선 전 수석 등 대통령을 보조하는 사람이 국정원장에게 받은 소액은 뇌물이라면서 정작 대통령 본인이 받은 수십억원은 뇌물이 아니라는 1심 선고를 수긍하기 어렵다"며 “(국정원장들이) 나랏돈을 횡령해 (박 전 대통령에게) 돈을 주면 뇌물죄의 죄질이 더 나빠지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를 상납받고 옛 새누리당의 선거 공천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법원종합청사 형사대법정 417호에서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이승엽 판사, 재판장 성창호 부장판사, 강명중 판사. 사진/뉴시스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