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13일 현직 부장판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렀다. 정모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9시52분쯤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자리에서 재판 거래를 위한 문건을 왜 작성했냐고 묻는 취재진에 "최대한 성실히 수사에 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로 문건을 작성했는지에 대해 "상세한 내용은 검찰에 말씀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으며, 재판부에 복귀해서도 재판 거래 의혹 문건을 다수 작성한 것이 문제없다고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조사 과정에서 상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답변한 후 조사실로 향했다.
정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근무하던 2013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관련 검토' 등 재판 거래 의혹이 담긴 다수의 문건을 작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후 2015년 2월부터 서울중앙지법 판사로 재직하면서도 관련 문건을 작성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법원행정처가 6월5일 공개한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관련 검토'란 문건에는 서울고법이 2014년 9월19일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는 결정을 하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그달 30일 대법원에 재항고한 상황에서 사건 진행 방향 예측과 그에 따른 파급 효과 분석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해당 문건은 서울고법의 인용 결정 후의 청와대의 입장을 '크게 불만을 표시', '비정상적 행태로 규정', '사법 관련 최대 현안으로 취급'으로 분석하고 있다. 또 재항고가 기각되면 대법원의 상고법원 입법 추진 등에 대한 견제·방해가 있을 것으로 예측한 후 재항고 기각은 청와대와 대법원에 모두 손해가 되고, 재항고 인용은 양측에 모두 이득이 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 '원세훈 전 국정원장 사건 관련 검토'란 문건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항소심 판결 선고 결과에 따른 예상 시나리오를 다뤘다. 특히 원 전 원장이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를 대비해 '우선 상고법원 입법 추진에 미칠 악영향 최소화를 위해 노력',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지 사건 등 사법 현안 신속 처리' 등 청와대와의 신뢰 회복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이번 수사에 착수한 이후 검찰이 현직 부장판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부른 것은 이날이 두 번째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지난 8일과 9일 김모 창원지법 마산지원 부장판사를 조사했다. 김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을 맡았던 2015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판사 모임 동향 파악과 함께 대책 문건 등을 작성한 혐의를 받는다.
지난해 2월 본인이 사용하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서 2만4500여개의 파일을 삭제하는 등 공용물손상 혐의도 받고 있다. 김 부장판사의 행위는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견제 시도가 법원 내에서 문제가 된 이후에 전격적으로 이뤄졌으며, 삭제된 파일 중에는 국제인권법연구회 또는 연구회의 소모임인 '인사모'와 관련된 파일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