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최근의 고용 부진과 관련해 정부 책임을 인정하면서 고용정책 책임자들에게 강도 높은 주문을 했다. 문 대통령의 취임 후 '1호 업무 지시'가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구성이었지만 지금까지 고용 상황은 계속 악화돼 왔다. 통계청의 각종 지표들은 암울한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흐름이 계속 이어지면 민심이 돌아서게 되고, 결국 국정운영의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문 대통령이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사실상 최후통첩을 했다. 책임지고 상황을 호전시켜라. 상황이 호전되지 못하면 사표를 내라!
일자리가 절박한 많은 구직자들은 두 사람만 바라보게 됐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는 생존 그 자체다. 두 사람의 사명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그러나 일자리는 두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다. 정부의 공무원들이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무원 증원을 통해 일부 일자리 확대 효과를 꾀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본질적인 처방책도 아니고 나중에 국민 세금 증세로 연결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오히려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일자리가 생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기업들에게는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개인들에게는 창업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정부의 주요 역할이다.
물론 투자나 창업을 위한 환경 조성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지금처럼 산업구조의 프레임이 근본적으로 전환되고 있는 시기에는 더더욱 어렵다. 기존 제조업은 대부분 사양산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고 그 안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구조조정 대상으로 전락했다. 재교육을 받는다 하더라도 정규직으로 취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반 사무직의 경우도 상황은 유사하다. 전통적 사무직의 경우 업무 경력이 많으면 전문성을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업무 대부분이 디지털화되어 있어 개인 고유의 경험이 중요하지가 않아 정년이 계속 단축되고 있다. 이르면 40대 후반 명예퇴직을 하고 나면 특별히 갈 만한 새로운 직장도 없다.
전반적으로 기존의 일자리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데 아직 새로운 일자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일자리를 위해 올해 추경 포함 20조원이 집행될 예정이고 내년에는 더 많은 돈이 투입될 가능성도 크지만 투자 대비 효과가 쉽게 예측되지 않는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기존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예산의 대부분이 소용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세수가 넉넉해 일자리 예산을 풍요롭게 하는 데 사용될 수 있지만 언제까지나 세금에 의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래를 위해 투자되어야 할 예산이 현상 유지를 위해 소진되고 있어 투자 대비 효과가 별로 없는데도 계속 집행되고 있다. 물론 그 현상 유지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걱정이다.
이런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정권 유지가 아니라 국가를 위한 중장기 플랜이다. 문 대통령의 최후통첩에 순간적 비장감이 보이지만 중장기적 통찰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일자리를 포함한 경제 전반적 상황은 대통령 말 한마디로 쉽게 호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미래는 준비하는 만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금은 비장감만큼이나 통찰력이 필요한 시기다. 미래의 일자리를 위해 사회를 구조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새로운 비즈니스는 인간의 새로운 욕망을 충족시킬 때 시작된다. 당연히 기존의 제도와 질서를 부정하면서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기존의 제도와 질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혁신은 청년세대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새로운 생각은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부는 가능하겠지만 기존 제도와 질서 안에서 살아온 기성세대들은 본능적으로 현실 안주적 사고방식이 강하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주요 공직자들 역시 관료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기성세대와 공직자 의식 속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미래, 새로운 일자리는 누구나 다 예상하는 교과서적인 미래와 일자리에 불과하다. 반면 청년세대는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어린 세대들이 기발한 생각을 하고 엉뚱한 실험을 할 수 있도록 학교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는 유기체인 인간에게 서식지와도 같다. 동시에 국가 경제에도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때문에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국가의 역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현재를 인정하되, 시각은 미래를 향해야 한다. 과감하게 유연해야 한다. 아직도 규제가 너무 많다. 새로운 발상이 비즈니스로 연결될 환경이 너무 척박하다. 모든 것을 이념적으로 생각하는 습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새로운 일자리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는 사표를 내도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라서 최후통첩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미래의 일자리는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김홍열 성공회대 겸임교수(firrenz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