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국가 예산과 거시경제 전반을 다루는 상임위원회다.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이행하기 위한 필수 법안은 이곳을 거쳐야 한다. 기재위는 이제껏 보수 정당이 상임위원장 자리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었지만, 20대 국회 후반기에 처음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위원장을 맡게 됐다. 위원장은 3선의 정성호 의원이다.
정 위원장이 맞닥뜨린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을 놓고 야당의 공세는 계속되고 있고 함께 가야할 혁신성장도 추진 동력이 아직 약하다. 그는 최근 고용과 가계소득 악화지표에 대해 “마음이 무겁고 걱정된다”며 “여당 기재위원장으로서 정부 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입법, 예산으로 뒷받침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
후반기 국회에서 정 위원장이 풀어가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당장 보유세 강화 등 세제 개편 이슈를 두고 여야가 치열하게 맞붙을 전망이다. 규제혁신법과 서비스산업발전법도 기재위 논의 대상이다. 정 위원장은 “지금 민생경제가 어려운 데는 국회의 책임도 크다”며 “여야가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큰 타협안들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호 기획재정위원장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재위 전체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정성호 위원장 페이스북
“우리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도그마에 빠졌다.” 정성호 위원장은 24일 <뉴스토마토>와 인터뷰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필요성에 대해 긴 시간을 할애하며 설명했다. 다만 정부가 소득을 높여주기 위한 방안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단행했지만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한 분석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은 지난 대선 당시 홍준표, 안철수 후보 모두가 공약했다”며 “다만 정부가 지역별·업종별 최저임금 인상 차등화를 검토하는 등 정책의 집행 속도와 범위에 대해 고민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제 소임을 못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소득주도성장의 방향은 맞지만 입법적으로 보완하지 못한 국회의 책임도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그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국회가 통과를 안 시켜주고 있다”며 “한마디로 국회가 입법 지원을 안 해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회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견제하고 하는 것인데, 그 수단은 입법과 예산, 국정감사”라며 “그런 면에서 보자면 국회가 입법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은 국회의 소임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게 제 생각이다. 국회의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정 위원장은 정부가 최근 고용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재정 확대에 대해 자꾸 국가 채무 늘어나는 것 아니냐, 재정 적자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데 아직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일자리 지원을 위해 54조원을 쓰면서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라며 “일자리 안정 자금을 통해 취약계층 지원과 중소기업·자영업자에 대한 세제 지원 등 여러 가지 제도적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가계소득분배 악화에 대해선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지고 있고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의 소득이 올라가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줄었다는 것 아닌가. 심각한 문제”라며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막연하게 구조적인 요인들, 경기적인 요인들만 탓할게 아니라 정책적인 측면에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호 기획재정위원장(왼쪽)이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19 예산안 당정협의에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규제 풀어 기업 투자환경 마련해줘야
“결국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업이다. 규제를 풀어 투자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국회가 할 일이다.” 정 위원장은 기업의 투자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규제 완화를 주문했다. 정 위원장은 “국회가 경제 관련 입법안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며 “경제 성장 동력을 만들어가는 데 가장 큰 핵심은 기업이고, 기업의 투자 의욕을 고취시키고 기업의 혁신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주려면 역시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에서 요구하는 서비스법 등 규제 혁신 관련법들을 빨리 국회에서 처리해주는 것이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도리”라고 했다.
정 위원장은 당장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7년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서비스발전기본법을 8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단언했다. 다만 보건의료 부분을 제한해야 한다는 점은 거듭 강조했다. 실제 민주당은 서비스법 대상에서 보건의료 부문은 제외하는 내용의 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정 위원장은 “우리가 공공의료 비중이 10%가 안 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의료법인들이 영리사업을 하게 되면 의료 수요자인 환자 가족들은 무조건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보건의료를 포함하느냐 여부에 발목 잡혀 서비스법 처리를 계속 미룰 수 없다. 합의 가능한 부분이라도 법을 만들어서 처리해야 한다”며 야당의 협조를 촉구했다. 그는 “보건의료 부분은 여야 모두에게 쟁점이 되기 때문에 제외해서 개별법으로 처리하면 된다”며 “의원들에게도 간곡하게 부탁한다. 야당의 협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SOC 투자 죄악시하면 안돼”
“정부가 SOC(사회간접자본) 민자사업에 대해서는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침이 없어서 민자사업을 안하려고 한다.” 이와 함께 정 위원장은 기업 투자 증진과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얻을 방안으로 SOC 투자를 크게 늘릴 것을 주문했다. 고속도로 건설을 민간 기업에 맡기고, 도로 양옆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해 나오는 수익으로 통행료를 낮추면 공공성도 강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업 투자와 고용 확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위원장은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지역처럼 SOC 투자가 필요한 지역이 있는데도 정부는 무조건 SOC는 죄악인 것처럼 이야기 한다”며 “사회가 발전하는데 필요한 기반 시설들인 도로·철도·항만 등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SOC 투자에 소극적인 이유에 대해 “민간 투자 계약을 체결하면서 수요 예측을 잘못한 것들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대부분 호남과 영남에 있는, 정치적 이유로 투자가 결정된 도로들인데, 그런 점에서 SOC 투자가 필요한 곳에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성호 기획재정위원장. 사진/정성호 의원실 제공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