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변동·번호이동 가격차 실종…"통신사 안 바꿔요"

단통법 이후 번호이동 급감, 올 상반기 200만건 밑으로…시장도 활성화 대신 고착화

입력 : 2018-09-12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지은 기자] "진짜 하실 거예요? 번호이동 혜택 없는 건 아시죠? 신고 안 하는 조건으로 17만원까지 지원해 드릴게요."
 
갤럭시S7 이용자인 직장인 A씨. 사용 2년이 지난 스마트폰을 갤럭시노트9으로 바꾸기 위해 동네 대리점과 불법 지원금(페이백)의 성지로 불리는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의 이동통신 판매점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기변(기기변경)과 번이(번호이동)의 지원금 차이가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지난 2016년 갤럭시S7이 출시된 지 5개월이 지난 시점에 50만원가량의 지원금을 받고 구매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현재, 판매점에서 내세운 번호이동 지원금은 17만원이 최대였다. 이마저도 6만원대 요금제에 가입해야 받을 수 있다. 대리점 직원은 "불법 지원금으로 걸리면 1000만원 벌금을 내야 한다"면서도 "1~2건 정도 걸리는 것은 계도기간을 주기 때문에 기존 구매고객 추천 등에게만 특별히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자랑삼아 말했다. 
 
계산기를 두드린 끝에 A씨는 번호이동 대신 기존의 이통사를 유지하기로 했다. 출고가가 109만4500원인 갤럭시노트9 128GB를 SK텔레콤의 T플랜 라지 요금제(6만9000원)로 구입할 경우 공시지원금 13만5000원, 요금제에 따른 추가지원금 2만200원이 더해져 기기 값은 93만9300원이 된다. 24개월 약정 기준 매월 3만9130원을 기기 값으로 내야 한다. 이 경우 매월 통신비 청구금액은 할부이자를 포함해 11만439원(부가세 별도)이 된다. 선택약정 할인제도를 이용할 경우 공시지원금은 없지만 매월 1만7250원의 요금할인을 받는다. 기기 값은 매월 4만5600원이 청구된다. 상대적으로 단말기 가격이 높아보이지만 매월 통신비는 10만40원(부가세 별도)으로, 번호이동 때보다 월 1만399원, 2년 약정시 24만9576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 번호이동으로 17만원의 지원금을 받는 것보다 선택약정 할인제도를 이용하면 7만원가량 더 절약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지난 2014년 10월1일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도입되면서 이통사를 바꾸는, 이른바 번호이동 고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과거에는 소비자들이 스마트폰 구매시 높은 지원금을 주는 곳으로 이통사를 바꾸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단통법 시행 이후 보조금 규모가 제한되면서 번호이동의 이점이 사라졌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의 이동통신 3사 번호이동 수치를 보면 단통법 시행 이전인 2014년 상반기(1~6월) 총 463만2908건에서 하반기(7~12월) 270만9687건으로 40%가량 급감했다. 이후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반기별 번호이동 수치는 250~300만건에 그쳤다. 올해 들어서는 200만건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달 번호이동 건수가 갤럭시노트9 효과로 36만8734건을 기록하며 올 들어 월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단통법 시행 이전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같은 변화에는 지원금 대신 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는 선택약정할인 활성화의 영향도 컸다. 
 
이통사들로서는 굳이 지원금에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는 출혈경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됐다. 기존에는 서로 가입자를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이었다면, 단통법 시행 이후에는 안정적 수익을 추구할 수 있게 시장이 변화됐다. 이는 마케팅비용 절감으로 이어졌다. 이통 3사의 올 상반기 마케팅비용은 총 3조7248억원으로, 단통법 시행 직전인 2014년 상반기 4조6243억원에 비해 19.5% 줄었다. 단통법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게 된 소비자들 불만도 커졌다. 급기야 "단통법이 이통사 배만 불린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 같은 불만은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 가계 통신비 인하가 정책의 중심에 서도록 했다. 먼저 선택약정 할인율이 지난해 9월15일부터 기존 20%에서 25%로 상향됐다. 정부는 보편요금제 법제화도 추진 중이다. 
 
 
이통사들은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시장의 변화보다 안정을 택한 결과였지만, 정부 정책에 따른 무선사업 매출의 급감만 탓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안정적 방침은 변하지 않고 있다. 기기변경 시대를 대세로 인정하며 각종 결합 및 데이터 혜택 등을 통해 기존 가입자들을 자사에 잡아두는 '록인(Lock-in)' 효과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에 이통 3사의 올해 요금제 전면개편도 데이터 공유라는 명분 아래 고가 요금제 위주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됐다. 가족 구성원과 20GB에서 많게는 40GB의 데이터를 나눌 수 있다며 기존 가입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뜯어보면 10만원에 가까운 요금제에 가입해야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통 3사는 여전히 고가 요금제에만 혜택을 집중하며 저가요금제 이용자를 차별하고 있다는 질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시민사회와 관련 소비자단체는 신규 요금제가 중저가 요금제 가입자를 차별한다고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쓰는 '헤비유저'가 데이터 이용을 독점해 중저가 요금제 가입자의 통신 품질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통 3사 모두 가입자 지키기 전략을 펼치면서, 시장은 경쟁 대신 기존 5(SK텔레콤)대 3(KT)대 2(LG유플러스)의 고착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이지은 기자 jieune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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