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고 깨끗한
, 바람직한 사회로 가느냐는 문제에서 볼 때 구속은 판사의 권한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 ”
지난 2007년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취임 2주년 기념식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 전 대법원장은 이어 “권한으로 착각하는 판사들이 과거에 있었고, 지금도 국민들에게 권한으로 비쳐지고 있다”며 “사법부는 아직 멀었다. 국민이 와서 믿고 맡길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사법부의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일부 판사들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점차 드러나고 있지만 구속영장은커녕 압수수색영장 청구도 줄줄이 기각되고 있어 검찰 수사가 수개월째 진전되지 않고 있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영장심사를 하는 영장전담재판부가 기존 3개에서 4개로 늘어났다. 법원은 “기존 형사단독 본안사건 접수가 감소한 반면 영장신청사건이 늘어났다”며 업무량 편차 해소를 위한 결정이라고 답했지만 2주 만인 지난 20일 추가 증설이 건의된 상황까지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법원은 추가로 ‘동일하거나 유사한 사안에 대한 재청구, 재재청구에 따른 재배당이 필요한 경우 이를 담당할 영장전담법관을 충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검찰이 사법농단 연루 의혹이 드러난 판사들에 대해 거듭 영장청구를 하자 앞으로 이를 더 적극적으로 맞서겠다는 법원의 ‘권한’으로 읽혀 안타까울 뿐이다. 실제 서울중앙지검은 앞서 특수4부까지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투입했다.
대법원 기밀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해 법원은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고 증거인멸 사유가 없다”며 기각했다. 이는 기각을 위한 사유일뿐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판사의 책임이라기보다는 권한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영장청구량은 3만3000여건에서 3만9000여건으로 증가하다 2017년에 들어 3만5000여건이 청구돼 감소세를 보였다. 청구량이 줄었는데도 한달 새 영장전담재판부를 2개나 증설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또 ‘왜 진작 늘리지 않았냐’는 국민들의 원성 또한 크다. 이번 증설이 국민보다는 제식구인 판사들의 심리에 보다 집중하기 위한 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영장실질심사는 구속을 심사하는 단계이기 때문에당사자들인 국민들에게 매우 중요한 절차며, 판사의 ‘책임’이 전제돼야 한다. 이 ‘책임’을 통해서 바람직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 전 대법원장의 발언을 곱씹어보게 된다.
최영지 사회부 기자(yj1130@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