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영원히 함께 하자, 최선을 다하자. 당시에는 그런 얘기들을 연습실에서 많이 했었는데요. 우리들의 맹세였죠.” (희준)
“저희들의 맹세 다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강타)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1세대 아이돌 H.O.T.의 ‘2018 포에버 하이파이브 오브 틴에이저스 (2018 Forever High-five Of Teenagers)’ 콘서트. 공연 중반부 90년대 이들이 꿈꾼 ‘맹세’가 울려 퍼지자 슬픔과 환희로 뒤범벅된 ‘하얀 물결’이 거대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하얀 정장을 입고 노래 부르는 5명은 5분할 된 대형 LED 스크린이 각각 비춰줬다. 잠시 뒤 화면은 하나로 합쳐지고, 팬들에게 못다했던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들이 하얀 검은 글씨체로 흘러갔다.
‘연습실에서 탕수육을 걸고 웃으며 영원을 약속했던 우리(H.O.T. 멤버들)… 하지만 우리(H.O.T. 멤버들, 팬들 모두에게)는 인사도 못하고 헤어져 버렸지.’
2001년 2월27일 이 곳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던 이들의 약속은 17년 만에 그렇게 지켜졌다. 이제는 막내 재원이 불혹을 앞둘 정도로 세월은 흘렀지만, 주최 측 추산 13~14일 양일 간 잠실주경기장을 가득 채운 10만 관객의 함성은 ‘그때 그 시절’ 모습 그대로였다. ‘Club H.O.T.’라 적힌 하얀 우비를 입은 팬들은 형광봉을 흔들며 약속을 지켜준 이들에 눈물과 함성으로 주경기장이 떠나갈 듯 화답했다.
'우리들의 맹세' 부르는 H.O.T. 사진/PRM
◇화려했던, 그 시절의 '오빠들'
저녁 7시12분 장내의 불이 소등되고, ‘아이야’의 강렬한 도입부가 흘러나오자 팬들은 일제히 흰색으로 빛나는 응원봉을 들고 그 시절 응원법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디스이즈메시지 프롬’이란 글귀와 함께 시간은 1996년로 거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데뷔곡 '전사의 후예'로 포문을 연 이들은 ‘늑대와 양’, ‘투지’, ‘아웃사이드 캐슬’, ‘열맞춰’, ‘아이야’ 등 1~5집을 대표하는 곡들을 휴식 한번 없이 이어가며 그대로 재현해냈다.
특히 ‘늑대와 양’의 진공춤이나 ‘아웃사이더 캐슬’ 도입부의 쉐이킹 안무 등 당시의 안무 역시 그시절 영상 아래 그대로 재현됐다. 학교 폭력과 씨랜드 참사 희생자, 사회적 약자 등을 위했던 그들의 노랫말은 5만 관객 모두의 입을 타고 흘렀다. 7곡이 끝난 뒤에야 이들은 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H.O.T.입니다.” “저희가 이 장소에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렸던 게 17년이 지났습니다. 같은 장소이지만 너무 오래 걸려서 돌아온 것 같습니다. 17년 만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저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많은 추억 만들기를 바랍니다.”
H.O.T. 무대 . 사진/PRM
◇각자의 길, 그리고 재결합 가능성
멤버들 각자 개성이 담긴 솔로 무대는 2001년 5월13일 해체 후 지난 17년의 궤적을 돌아보게끔 하는 자리였다.
메인 보컬 강타는 팝송 ‘라잇 히어 웨이팅(Right Here Waiting)’을 부르며 감미로운 무대를 꾸몄고, 장우혁은 자동차를 타고 등장해 ‘시간이 멈춘 날(Time Is (L)over)’, ‘지지 않는 태양’ 등 파워풀한 안무로 모두를 일으켜 세웠다.
문희준과 토니, 이재원 역시 댄스, 힙합 등 개별 솔로곡으로 무대를 채우면서 ‘각자의 길’을 걸어온 지난 날들을 팬들과 함께 공유했다.
특히 토니는 ‘뉴송’이라 소개한 ‘HOT Knight’을 부르면서 “어떻게 하다 보니 오늘 제 신곡이 나오게 됐다. 5명의 신곡이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 날이 오는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고 말해 재결합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재원은 JTL 시절 ‘어 베러 데이(A Better Day)’ 때의 무대를 선보였다. 이 곡은 H.O.T. 해체에 대한 심경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곡이지만 이재원은 이날 곡 처음과 끝에 “포에버 H.O.T.”를 곁들이며 17년 만에 함께 한 감동의 순간을 팬들과 함께 했다.
장우혁. 사진/PRM
◇망치 춤추며 다시 팬들 속으로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멤버들이 ‘캔디’를 부르며 객석 가운데 위치한 서브무대에 깜짝 등장한 순간이었다.
형형색색의 벙거지 모자와 털옷, 장갑은 공연장의 시간을 1996년으로 다시금 돌려 놓았다. 파워레이서춤과 망치춤도 그대로 복원됐다.
“이 의상 어때요? 20년 전에 신었던 신발들이에요. 우리 발을 다시 한번 모아볼까요?”
‘캔디’에 이어 ‘행복’을 부르면서 멤버들 각자는 야광봉을 흔드는 팬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저희가 이 쪽 무대로 나올 줄은 몰랐죠? 여기 모이신 여러분께 어떤 선물을 드릴까 고민하다 (서브 무대로 깜짝 등장하는) 이런 순서를 마련 해봤어요. 근데 여러분들 얼굴을 보니까 오히려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캔디 의상으로 갈아입고 서브무대에 깜짝 등장한 H.O.T. 사진/RPM
공연 중간 중간 멤버들은 연신 “실감이 나지 않는다”거나 “꿈을 꾸는 것 같고 현실이 아닌 것 같다”며 감격에 젖는 모습을 반복해 보였다.
“흰 물결을 다시 보게 되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 제가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토니)” “(여러분을 보고 있다는 게) 실제인지, TV인지 구분이 가질 않습니다. 17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믿겨지지가 않습니다.”(우혁)
“원래 멤버들이 말을 다 잘하는데, 저도 그렇고 입이 잘 안 열리네요. 이게 꿈일 정도로요.”(강타) “오늘이 H.O.T.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 나가는 계기였으면 좋겠습니다.”(재원)
13~14일 이틀 간 두 번 열린 17년 만의 무대는 총 10만 관객을 운집하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90년대 후반 중국 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해 한류의 문열 열었던 그룹답게 국내 팬들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관객이 몰려들었다.
공연 말미 팬들의 눈빛 만 보고도 마음이 전해진다는 이야기를 건넨 그룹은 강타의 곡 ‘빛’으로 다시 5만여 팬들의 ‘하얀 물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H.O.T. 공연 피날레. 사진/PRM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