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인공지능(AI) 서비스 춘추전국시대다. 국내 이동통신사·제조사·포털과 글로벌 기업까지 AI 시장 패권을 놓고 경쟁을 펼치고 있다. AI는 사용자의 반응이 많을수록, 데이터가 많이 쌓일수록 똑똑해진다. 그만큼 사람에 대한 이해력이 늘고, 고도화된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하다. 때문에 소비자들이 한 번 선택하면 다른 서비스로 쉽게 갈아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아직 확실한 승자가 없는 AI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유다. SK텔레콤도 AI 시장 패권을 잡기 위해 달리는 주자 중 한 명이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서는 1위지만 AI 시장에서는 다른 기업들과 같은 경쟁자 입장이다. SK텔레콤은 자체 AI 플랫폼 '누구'를 스피커와 내비게이션 T맵, 인터넷(IP)TV Btv 등에 적용했다. 지난 24일에는 기업들과 개발자들이 누구를 활용해 AI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을 개방하며 컨퍼런스도 개최했다. 누구 오픈 플랫폼 개발을 책임진 이현아 서비스플랫폼사업부 AI기술유닛장을 25일 서울 중구 파인에비뉴 빌딩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현아 SK텔레콤 서비스플랫폼사업부 AI기술유닛장이 서울 중구 파인에비뉴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박현준 기자
10개월간 오픈 플랫폼 개발…"쉬운 UX 구현 까다로워"
누구 오픈 플랫폼의 시작은 올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누구를 활용한 제휴 서비스를 하고 싶다는 기업들의 요청이 쏟아졌다. SK텔레콤이 지난 2016년 9월 출시한 누구가 탑재된 AI 스피커를 통해 자신들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SK텔레콤은 누구를 통해 많은 서비스와 콘텐츠를 선보이고 싶었지만 내부 개발자들이 모든 요청을 소화하기에 버거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이 유닛장이 떠올린 것이 오픈 플랫폼이다. 플랫폼은 AI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기업과 개발자들에게 제공되는 개발도구다. 누구 오픈 플랫폼이 많이 사용될수록 누구는 더 똑똑해지고 생태계는 확장된다.
AI 스피커를 사용하는 과정을 예로 든다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주는 서버를 호출하고 정제된 형태의 답을 도출하는 단계는 개발자의 손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사용자의 질문을 듣고 의도를 파악하는 단계는 개발환경만 제공된다면 굳이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다. 가령, 사용자가 "오늘 주가 알려줘"라고 물으면 AI가 "어떤 종목을 알려드릴까요?"라고 답하는 과정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모르는 기획자도 자신의 뜻에 따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사용자의 요청부터 답을 찾고 돌려주는 전 과정에서 수정 사항이 있을때마다 개발자들이 소스 코드를 고쳐 재배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플랫폼을 오픈해서 개발자들의 부담을 분산시켜야 했다. SK텔레콤이 강조하는 생태계 구축과도 연관됐다.
누구의 설계부터 오픈까지 약 10개월이 소요됐다. AI기술유닛의 직원들과 이 유닛장이 SK텔레콤 입사전 약 6개월간 몸 담았던 SK플래닛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들이 의기투합했다. 개발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쉬운 사용자환경(UX)을 만드는 것이었다. 코딩에 대한 지식이 없는 기획자들도 쉽게 따라가며 AI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해야 했다. 때문에 실제로 기획자가 오픈 플랫폼을 기획했다. 개발자가 기획했다면 본인이 보기엔 쉬울 수 있어도 기획자나 코딩 지식이 없는 사용자가 보면 어려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누구 컨퍼런스 2018'에서 참가자들이 SK텔레콤 '누구'가 탑재된 교육용 기기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네이버·SK플래닛 거친 AI 전문가…"한국 1등 AI 만들 것"
전자계산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 유닛장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네이버, SK플래닛을 거쳐 지난해 4월 SK텔레콤 AI기술 2본부장으로 합류했다. 특히 네이버에 약 10년간 근무하며 검색용 언어 처리 부문을 담당했다. 네이버부터 SK플래닛과 SK텔레콤을 거쳤지만 사용자의 질문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답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개발하는 큰 틀에서 보면 유사한 업무를 지속했다. 최근 AI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며 다소 달라졌다고 한다면 음성 서비스가 추가된 점이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머릿속은 '보다 나은 AI 서비스'로 가득 차 있다. 최근 눈여겨보는 것은 누구에 대한 소비자들의 의견이다. 누구 오픈플랫폼 컨퍼런스를 열고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용 후기가 이미 등록됐다. 누구가 탑재된 기기가 스피커와 내비게이션, IPTV 등으로 늘면서 질문 데이터도 늘었다. 사용자들이 어떤 점을 궁금해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오늘 SK 선발투수 누구야?", "이번 주 로또 당첨번호 뭐야?", "볼륨 중간으로 해줘" 등 질문의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고객들의 질문을 분석하며 개발해야 할 서비스의 우선순위를 정한다. 모든 의견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유닛장은 "AI의 기본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의 90%가 데이터라면 나머지 5%가 서비스, 또 나머지는 사용자들의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AI 서비스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어디일까. 이 유닛장은 AI 서비스인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장면을 꼽았다. 사람끼리 대화한다고 할 정도로 이질감이 없고 화자를 인식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알아서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점을 목표로 SK텔레콤은 다른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아직 국내 AI 시장은 승자도, 패자도 없다. 모두가 사용자 한 명, 데이터 한 건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 모든 서비스가 살아남을 수는 없다. 그는 지난해 이맘때쯤 AI 시장의 승자와 패자가 판가름 나지 않을까하고 예상했지만 아직은 뚜렷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상황이다. 누구 하나 치고 나가지 못했다는 의미다. 때문에 사용자를 늘리고 서비스를 고도화해 국내 AI 시장에서 1등을 차지하는 것이 이 유닛장의 목표다. 그는 "경쟁사들의 서비스에 비해 답변 시간은 확실히 누구가 짧다"며 "누구와 SK텔레콤의 강점을 기반으로 한국의 대표 AI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해외 시장 진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확실한 콘텐츠"를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해당 국가의 사용자들이 확실하게 좋아할만한 콘텐츠가 있다면 누구와 결합한 AI 서비스의 경쟁력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령, 방탄소년단 콘텐츠와 함께 아이돌 그룹의 인기가 많은 지역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이 유닛장은 "해외 진출은 명확한 목적과 콘텐츠가 확보돼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4일 처음으로 열었던 누구 컨퍼런스를 매년 이어갈 계획이다. 행사를 위한 행사가 아닌, 알찬 내용을 갖춘 개발자 행사로 지속한다는 생각이다. 첫 컨퍼런스 이후 이 유닛장이 몸 담았던 네이버 직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도 얻었다고 했다. 그는 "누구가 기본기를 갖췄고 개방해도 좋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매년 누구가 이만큼 컸다고 보여줄 수 있도록 직원들과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