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빈번한 항생제 사용으로 국내 보건업계에 내성 경고등이 켜진 가운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소비량을 보이고 있는 만큼 정부차원의 제도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분석이다.
7일 한국화이자가 서울시 중구 화이자타워에서 발표한 '항생제 내성(AMR): 현황과 해결 방안' 강연자로 나선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선 항생제 접근성을 불필요하게 낮추는 것과 필요한 약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별개로 구분해야 한다"라며 "새로운 치료제를 확보하면서 항생제 사용 빈도가 낮은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전국 항생제 내성 패턴을 분석하는 등 국내 실정에 맞는 전략과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글로벌 공중 보건 화두로 떠오른 항생제 내성 대응을 위해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을 통해 사용량을 낮추고 있는 해외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는 해마다 늘어나는 항생제 사용으로 내성균 토착화가 우려되는 만큼 실효성 있는 제도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체에 유해한 세균을 표적하는 항생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의약 자원으로 꼽힌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병원체가 항생제에 저항하는 방식을 스스로 찾아내면 항생제 효과는 떨어지게 된다. 특히 생존한 병원체는 성장하며 내성을 퍼뜨리고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항생제 내성(AMR)을 보유하게 된다.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균에 의한 감염이 진행될 경우, 그동안 치료가 가능했던 질병이라도 기초적인 의료 조치조차 할 수 없어 치명적이다. 유럽질병관리센터(ECDC)에 따르면 이미 전 세계 박테리아의 70%는 최소 1종 이상의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지니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짐 오닐의 2016년 AMR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해마다 전 세계 약 70만명이 항생제 내성으로 사망하고 있으며, 오는 2050년에는 연간 1000만명으로 사망인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른 치용 비용 역시 천문학적으로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항생제 내성을 공중 보건 분야 최대 위협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 상태다. 거주 국가와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심각한 감염은 물론 관련 치료와 표준적 의료 절차 제공에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해외 국가들은 항생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신약 개발 촉진은 물론, 항생제 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들을 내놓고 있다.
유럽과 미국은 지난 2011년과 2014년 의료기관의 항생제 적정 사용 유도와 내성균 통합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전문위원회를 설치해 국가 차원의 관리에 나선 상태다. 특히 미국은 지난 2012년 이후 신규 항생제를 6종을 하며 내성균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유럽의회는 지난달 가축에 대한 항생제 사용 역시 엄격히 제한하는 관련 법안을 가결하기도 했다. 항생제 내성균이 식품을 통해 인체로 감염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의존도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OECD 평균 항생제 사용량이 지난 2008년 21.7DID(1000명 중 21.7명 사용)에서 2016년 21.2DID로 감소한 반면, 한국은 26.9DID에서 34.8DID로 증가했다. 지난 2008년 OECD 평균 보다 높은 자국 항생제 사용량에 심각성을 느끼고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실천해 2013년 평균치 이하로 떨어뜨리는 데 성공한 호주나 핀란드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에 정부가 지난 2016년 항생제 내성 관리를 위한 '국가 항생제 내성관리 대책' 아래 오는 2020년까지 2015년 대비 항생제 사용량을 2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아직 현장 일선인 의료기관이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은 미비한 상태다. 세부 추진 과제가 항생제 사용지침 확산과 진료 환경 개선, 의료기관 감염 관리 지원, 모니터링, 국민 인식 강화 등에 그친 탓이다.
신규 항생제에 대한 접근성 역시 턱없이 떨어진다. 장내세균이나 다제내성 녹농균 등 내성균에 대한 광범위한 효능이 입증된 MSD의 신규 항생제 '저박사'(2014년 FDA 허가)의 경우 하루 비용이 30만원인데 국내에선 비급여 처방이 이뤄지고 있으며, 해외 허가 10년 이상이 지나 복제약까지 출시된 '답토마이신'은 국내에 도입조차 안됐다. 국내사인 동아에스티가 개발한 '시벡스트로'는 이미 국내 허가와 급여까지 획득했으나 시장성을 이유로 해외에서만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이재갑 교수는 "국내의 경우 새로운 항생제가 나와도 도입이 늦거나 비급여로 허가돼 환자 부담이 큰 만큼 신규 치료제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또 상급병원뿐만 아니라 내성균 노출에 취약한 요양병원 등 중소병원에 대한 관리도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항생제 내성 경고등이 들어온 국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OECD 평균을 크게 상회하는 항생제 소비량을 보이고 있는 만큼 정부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사진/신화뉴시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