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상반기 주춤했던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최근 이어진 주요 기업 대형성과에 빛을 보고 있다. 오랜 기간 축적된 뚝심 투자가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향후 기대감 역시 커지는 분위기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단독 개발한 혁신 신약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판매허가를 신청한 SK바이오팜을 비롯해 대형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유한양행, 코오롱생명과학, 인트론바이오 등이 연달아 개발 신약의 성과를 이끌어 냈다.
SK바이오팜은 지난 26일 독자 개발한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 '세노바메이트'의 판매허가 신청서를 FDA에 제출했다. 오는 2022년 약 7조8000억원까지 시장 성장이 전망되는 뇌전증 치료제는 미국 시장만 놓고 봐도 1조원에 이른다. 기술수출이 아닌 생산부터 판매까지 전담하는 형태인 만큼 세노바메이트 특허 만료기간까지 수익은 온전히 SK바이오팜이 가져가게 된다.
이달 개발 신약의 기술수출이 연달아 이뤄지면서 코오롱생명과학, 유한양행의 경우 기대 이익을 크게 상회하는 성과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앞서 유한양행은 지난 5일 얀센과 1조4000억원 규모의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의 글로벌 기술수출 계약을, 코오롱생명과학은 19일 미국 먼디파마와 골관절염 치료제 '인보사'의 일본 시장 기술수출(6677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했다. 바이오벤처 인트론바이오 역시 20일 로이반트에 7500억 규모의 슈퍼박테리아 신약 'SAL200' 기술 수출을 성사시켰다.
지난해 증권시장을 주도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올해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2분기 들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비롯해 네이처셀 주가조작 의혹, 테마감리 등의 악재에 거품론이 고개를 들며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여기에 3분기 주요 기업의 실적 어닝쇼크와 시총 22조원 규모 바이오 대장주 삼성바이오로직스 거래 정지 처분까지 내려지며 또 한 번의 위기설이 감돌았다. 매년 전통 제조업 대비 높은 매출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를 집행 중이지만 괄목할만한 성과 부족에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돌아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달 들어서만 보름새 발생한 3조원에 가까운 각 사 기술수출과 업계 최초 독자 신약 판매허가 신청 등 잇따라 터진 호재에 주춤했던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평가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업계 내부는 물론, 외부 시선도 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혜린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은 R&D 모멘텀을 보유한 대형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약진이 기대되는 한해"라며 "신약 기술수출 성과 고려 시 R&D 투자 확대에 따른 실적부진으로 평가 절하되고 있는 제약 기업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제약·바이오기업들의 대형 성과가 암울한 한해를 보내던 분위기를 반전시킬 '잭팟'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충분히 성과가 도출될 시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산업 특성상 상대적으로 다른 산업에 비해 더딘 성과 도출에 외부에선 위기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묵묵히 진행해 온 투자들이 하나둘 성과를 낼 시기가 됐다는 분석에서다. 실제로 인보사의 경우 개발에서 상품화까지 총 19년의 시간이 소요됐고, 세노바메이트와 SAL200 역시 2000년대 초반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산업이 타 업종 대비 오너 경영이 두드러지는 점 역시 신약 개발을 위한 긴 호흡에서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오랜 기간을 기다려야하는 과정에서 일관성 있는 의사결정 구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전문경영인 체제인 유한양행의 경우 상대적으로 장기 의사결정이 어려운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유망 기업과 기술을 사들이는 오픈이노베이션 전략을 영리하게 활용한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대형 성과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연달아 터진 대형 호재를 잭팟으로 보는 시선도 존재하지만 업계는 오랜기간 집행해온 투자가 충분히 결실을 맺을 시기가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사진/유한양행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