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아버지, 당신이 없어요…(You're not there)’
아버지를 하늘로 보낸 한 청년의 음유시가 2000여명의 눈을 뜨겁게 데우고 있었다.
음악하는 아들을 사랑과 헌신으로 보살펴 준 당신, 이제는 기억의 조각으로만 새겨둘 뿐인 당신을 위한 노랫말들. ‘전 작별 인사도 못했는걸요/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때 갑자기 객석이 동요했다. 그의 아픔을 거들기 시작했다. 준비하고 있던 피켓을 하나, 둘 들며. ‘우리가 여기에 있잖아, 너를 위해.(We’re here for U)’
밴드 루카스 그레이엄. 사진/프라이빗커브
25일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에서 열린 루카스 그레이엄의 첫 단독 내한 공연. 프론트맨 루카스 포캐머가 견뎌내고 살아온 생의 서사가 홀에 가득 울렸다.
때론 경쾌하고 밝은 세상의 찬가가, 때론 저릿하고 아련한 비가가 반복하듯 오갔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느낄 법한, 보편적 희망과 아픔의 정서들. 그들의 곁에는 열광적으로, 그리고 따스하게 밴드의 이야기를 보듬는 관객들이 있었다.
첫 곡 ‘낫 어 댐 띵 체인지드(Not A Damn Thing Changed)’로 문을 연 밴드는 초반부터 객석과의 소통에 적극적이었다.
포캐머는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씩 열거 하는가 하면, “레이디스 앤 젠틀맨”이라며 박수와 떼창을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3번째 곡 ‘스트립 노 모어(Strip No More)’부터는 아예 힙합퍼처럼 한 손을 치켜 들며 홀을 달궜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멕섬 노이즈~”
밴드 루카스 그레이엄. 사진/프라이빗커브
라이브는 ‘CD 따위’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떼창을 하는 관객들의 음성을 베이스 삼아 그 위를 자유로운 화음으로 거닐었다. 절정 부분에서는 미성의 고음을 유려하게 뽐냈는데, 마치 천국의 문을 두드리는 듯 했다.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라이브의 진수가 그대로 느껴졌다.
기본 밴드셋(드럼과 기타, 베이스)과 브라스팀(트럼펫, 트럼본, 색소폰)의 조화 역시 그의 미성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예술’이었다.
그의 음악을 관통하는 자신과 가족에 대한 서사는 공연 내내 울려 퍼졌다.
2017년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참석 차 한국을 처음 방문 했을 때도 그랬다. 7살부터 11살, 20살로 이어지는 한 청년의 성장 과정을 들려주는가 하면(‘7 Years’), 앞으로 평생을 아버지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감정(‘Happy Home’)을 노래했다. 끊임없이 상처 받고 외로움에 시달리는 한 청년의 노랫말들이 촉촉한 북유럽 감성을 머금어 관객들을 서정에 젖게 했다.
2년 후 다시 찾은 한국에서는 어엿한 가장으로서의 일상이 추가됐다. 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책임감과 ‘딸바보’로서의 충만한 행복감. 이날도 곡‘룰러비(Lullaby)’를 노래한 뒤 실제 녹음한 딸의 심장 박동 소리를 틀자 공연장 분위기가 로맨틱한 서정으로 물들었다.
밴드 루카스 그레이엄. 사진/프라이빗커브
공연 중후반부 무대와 객석의 열기는 비등점을 향해갔다. ‘돈 츄 워리(Don’t you Worry)’에선 상의를 탈의하고 태극기를 드럼 세트에 매다는가 하면, 관객들의 엄청난 떼창에 절을하며 감사해 했다.
‘딸이 좋아한다’는 피카츄 모자를 쓰고 “광장시장에 가 김치의 레시피를 알았다. 어제 소주도 먹었다”고 하니 홀을 울리는 관중들의 함성이 이어지기도 했다.
총 16곡의 인생 서사를 훑은 끝에 고른 마지막 앙코르곡은 ‘퓨너럴(Funeral)’. 이번에는 ‘죽음’이란 소재를 아름다운 관점으로 토해댔다. 훗날 자신의 장례식에 오게 될 누군가를 상상하며 쓴 곡.
‘내 장례식장에 온 걸 환영해요’
‘난 당신을 지켜보고 당신을 사랑해요/ 하늘 위에서 바라보고 있을 거에요’
하늘에서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겠다는 그의 다짐이 다시 시처럼 읊어졌다. 피아노와 오르간, 코러스로 가스펠적 사운드가 그의 따스할 인생 여정을 아름답게 밝혀 주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