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임상시험 참여자 모집합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 문구다. 병원이나 제약사, 화장품 제조사들이 신약이나 신제품을 개발하며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임상시험에 참여할 희망자를 모집하는 내용이다. 병원이나 제약사는 신약 개발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임상시험에 참여할 사람을 찾기 위해 대부분 이러한 광고에 의존한다. 임상시험 참여 희망자도 광고나 각 병원 홈페이지를 직접 뒤져야 해 서로 불편했다. 이병일 올리브헬스케어 대표(46)는 이 점에 주목했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임상시험 참여 중개 플랫폼으로 삼았다. 하지만 규제로 인해 사업을 확장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어려움을 겪던 차에 만난 것이 규제 샌드박스다. 올리브헬스케어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규제 샌드박스로 인해 온라인 임상시험 참여희망자 중개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지난 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올리브헬스케어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이병일 올리브헬스케어 대표가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사무실의 키오스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박현준 기자
위기에서 만난 규제 샌드박스
올리브헬스케어의 임상시험 참여자 중개 서비스 앱 '올리브씨'는 지난 2017년 9월 출시됐다. 널리 보급된 스마트폰을 통해 올바른 임상시험 정보를 알리고 참여자를 모집하면 신약 개발 속도를 더 낼 수 있다는 사업 목표 아래 나온 앱이다. 하지만 규제가 있었다. 현행 약사법령에 따르면 임상시험 참여자 모집 광고는 임상시험심사위원회의 사전검토를 받아야 한다. 식약처는 임상시험 참여해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온라인을 통한 참여자 모집 광고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올리브헬스케어의 임상시험 참여자 모집 광고가 심의를 통과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올리브씨를 통한 임상시험 신청은 매우 간단한 것만 가능했다.
올리브씨를 통해 합법적이고 정확한 임상시험 정보를 제공하고 참여 희망자가 신청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대표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규제 탓에 그의 서비스는 임상시험 정보를 앱에 게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직접 병원 홈페이지를 통해 파악한 정보를 앱에 올렸다. 일부 병원이 이를 꺼림칙하게 여겼다. 적당한 임상시험 희망자를 모집하고 싶지만 규제 때문에 혹시나 병원에 불똥이 튈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일부 소비자자들이 임상시험 참여를 이른바 '마루타 아르바이트'로 불러 좋지 않은 인식도 있었다.
올리브헬스케어의 사업은 처음엔 지지부진했다. 이 대표는 사업을 접어야 하나 고민도 했다. 올바른 임상시험 정보를 알려 병원과 시험 참여 희망자를 이어준다는 공익적 목적으로 시작했지만 규제가 가로막았다. 임상시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도 싸워야 했다. 스타트업 투자 및 육성 전문 기관 투썬캠퍼스로부터 사업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투자도 받았지만 매출이 나오지 않는데 회사를 이어나갈 재간이 없었다.
그때 규제 샌드박스가 시행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기존에 규제가 있어도 사업을 임시로 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고 규제를 개선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대표에게 귀가 번쩍 뜨일만한 소식이었다.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ICT 규제 샌드박스의 문을 두드렸다. 결국 식약처는 규제 샌드박스를 계기로 지난 2월13일 전 임상시험 실시기관에 임상시험 참여자의 온라인 모집이 가능하다고 공지했다. 일시에 규제가 해소된 것이다. 임시로 사업을 허가해주는 것에서 더 나아가 즉시 규제가 사라졌다.
규제가 사라지자 병원들이 즉각 반응했다. 이른바 빅 5라 불리는 주요 대형병원들이 올리브헬스케어에 임상시험 참여 희망자 모집을 의뢰했다. 글로벌 제약사들도 올리브씨를 통해 임상시험 참여자를 모집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병원과 올리브헬스케어 모두 임상시험 참여 희망자를 온라인으로 모집하며 정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11일 현재 올리브씨에서 제공 중인 임상시험 정보는 약 160건이며 그 중 참여 희망자가 신청까지 할 수 있는 것은 약 30건이다. 지난 2월 기준 올리브씨의 다운로드는 8만건을 넘어섰다. 4만명 이상의 개인회원도 보유했다. 대형병원들과 글로벌 제약사들이 올리브씨를 활용하면서 게재되는 임상시험 정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올리브헬스케어는 키오스크 사업도 하고 있다. 주요 병원 로비에 키오스크를 설치하고 주요 임상시험 정보를 제공한다. 임상시험 참여 희망자는 키오스크의 큰 화면을 통해 임상시험 정보를 확인하고 신청까지 할 수 있다.
올리브씨 앱의 임상시험 정보(왼쪽)와 사용자의 임상시험 신청내역. 사진/올리브헬스케어
ICT+의료 사업 경험…"아시아에 한국 임상시험 능력 알릴 것"
이 대표는 ICT와 의료 사업의 경험을 함께 갖췄다. 이 대표는 한양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글로벌의료경영 MBA 학위를 취득했다. 지난해에는 서울대 의과대학 의약품산업의학 고위과정도 수료했다.
그는 과거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근무하며 브랜드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인기가 많았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싸이월드, PC·모바일메신저 네이트온 등의 마케팅을 맡으며 ICT 플랫폼에 대한 전문성을 쌓았다. 동시에 헬스케어 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퇴사 후 헬스커뮤니케이션 전문 기업 엔자임헬스에서 디지털 전문가로 합류해 한국 의료의 해외 진출 컨설팅 사업에 몸 담았다.
그는 엔자임헬스에서 근무하며 한국 의료 수준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할 만큼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대형병원들은 많은 환자들을 다루고 있어 경험이 풍부하다. 이 대표는 "임상시험에 참여하면 비용이 들지 않고 전문 의료인이 지정돼 꾸준한 추적과 관리를 받을 수 있다"며 "한국의 의료수준을 알려 임상시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5년 4월1일 설립된 올리브헬스케어는 다음달이면 창립 4주년을 맞는다. 초반 4년은 임상시험 온라인 중개 서비스를 막은 규제·편견과 싸우며 사업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제 규제가 사라졌다. 한국의 우수한 의료와 올리브헬스케어의 ICT 플랫폼 역량을 바탕으로 사업을 국내·외 시장으로 확대할 기반이 마련됐다.
이 대표는 다양한 서비스를 계획 중이다. 임상시험 참여자를 해당 병원까지 전용 차량으로 태워주는 서비스다. 차에서 전문 코디네이터가 동행하며 임상시험에 대해 설명해주는 서비스도 검토 중이다. 새로운 직군이 창출될 수도 있다.
임상시험은 글로벌 기준을 따른다. 때문에 의료 인프라가 잘 갖춰진 한국에서 온라인 임상시험 참여자 중개 서비스가 검증을 받으면 해외로 진출해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일부 선진국들은 이미 TV를 통해 임상시험 광고를 하며 참여자를 모집하고 있다. 이 대표는 조만간 홍콩과 중국에 출장을 갈 계획이다. 현지에 지사 설립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베트남도 찾을 예정이다. 그는 국내 대형병원과 베트남 하노이의 병원과의 협력 사업을 추진 중이다. 아시아 지역은 아직 한국만큼 의료 수준이 높지 않아 올리브씨와 같은 사업 모델이 없다. 이에 이 대표는 올리브씨의 영문 버전도 선보이며 해외 시장 선점에 나설 계획이다.
이 대표는 규제가 해소됐지만 임상시험 온라인 중개 사업을 길게 보고 급하지 않게 진행할 계획이다. 보통 임상시험은 1상부터 3상까지 약 10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많은 돈과 인력이 투입되며 끈기가 필요하다. 그만큼 호흡이 길고 느리다. 이 대표는 올리브헬스케어의 사업도 10년은 유지돼야 서비스가 안정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임상시험에 대한 오해와 편견과 싸우는 것이 힘들었다"며 "선진국 수준인 한국 의료와 온라인 임상시험 참여자 중개 서비스를 해외에도 적극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