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사법농단’의 핵심 인물로 지목받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재판장 윤종섭)는 11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등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임 전 차장과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검찰이 제출한 2100여건의 증거제출목록 채택여부도 대부분 부동의 또는 보류했다.
임 전 차장은 함께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과의 공모여부에 대해 “공모가 성립되려면 범죄사실에 해당해야 되는데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공소사실에 기재된 행위가 모두 사실이라도 범죄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혐의 중 구체적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현재 기억할 수 없다” “1차적 사실관계는 기억이 없고 2차적 법률위반여부는 법리적 검토가 필요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임 전 차장의 기억은 지난해 검찰이 주거지와 근무처를 압수수색해 USB를 압수하던 상황에 이르러선 상당히 또렷해졌다. 그는 당시 압수수색 상황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으로 진술하면서 “영장 열람의 기회도 충분히 주지 않고 설명의무도 다하지 않았다”며 “절차상 하자로 위법수집증거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사실 진술 이후 질의에 앞서 임 전 차장과 변호인의 인정여부 및 심경 등을 청취했다. 임 전 차장은 강제징용사건 재판 개입이나 국회의원 재판청탁 등 행정부 및 입법부를 상대로 한 이익 도모 혐의에 대해 “실제로 현장에서 국회, 기재부, 법무부, 검찰, 외교부 등 국가기관과의 상호 관계설정이 그렇게 단순하거나 녹록지 않다”면서 “재판독립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지만, 사법부가 유관 국가기관과 관계를 단절한 채 유아독존할 순 없다. 그러나 사법부가 재판거래를 통해 정치권력과 유착했다는 건 결코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각급 법원 재판 개입 혐의에 대해서도 “일선 법원의 주요 재판에 대해 다양한 행정목적 달성 차원에서 어느 정도 관심과 모니터링을 했지만, 항상 삼가고 또 조심했다”며 “부득이하게 의견을 개진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일선 법관의 소신과 양심을 꺾고 행정처 의중을 관철한 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임 전 차장의 변호인인 이병세 변호사도 “사법행정권 행사를 비난할 순 있어도 재판 왜곡이나 거래는 없었다. 행정적·정치적 책임에 대해 형사상 직권남용죄를 적용하는 건 ‘직권남용의 남용’”이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사법사상 유례없는 장문의 공소장은 ‘공소장 일본주의’에 부합하는 적법한 공소장이 아니다. 공소장을 기각해달라”며 검찰을 비난했다. 그는 언론을 향해서도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와 이를 사실인 냥 퍼 나르며 단독 보도하는 일련의 언론권력 앞에 전직 법관들도 약자였다”면서 “검찰조사와 공판중심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보도관행”이라고 비판했다.
임 전 차장은 공무상비밀누설,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 위반,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국고 등 손실), 공전자기록 등 위작 및 행사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사법농단의 핵심 인물로,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 위상 강화를 위해 이익을 도모하고 판사를 부당 사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기소일지. 그래픽/뉴시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