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서울의대를 한국 대학서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두고,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모와 아이들의 이야기다. 서울의대란 성공의 지름길이며, 한국사회에서 권력을 움켜쥘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의사 출신 대통령 하나 없고, 의사로 정치에 입문했던 안철수가 좌초한 상황에서, 왜 권력을 움켜쥐는 방법이 꼭 의사여야 할까?
누군가는 이를 서울법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정확하게 공부의 순으로 학생들을 가파르게 줄세우는 서울의대가 부모들의 관심을 얻은게 아닌가 추측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의사는 의대 입학만 통과하고 나면, 한국에서 고소득의 인생이 보장되는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다. 그게 이유다. 스카이 캐슬이 서울의대 입시에 목을 매는 이유는, 권력에 가까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권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안정적인 삶을 도모하고 싶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탄핵되는 마당에, 스카이캐슬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탐할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
스카이캐슬 종영 이후 서울의대학장이 인터뷰에 나섰다. 그는 서울의대의 앞으로 서울의대를 개혁할 것이라며, 기초의학을 연구하는 '연구의사 양성'과 '사회적 의료'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사회적 의료란 병들기 전에 건강하게 만드는 사회적 의료인을 양성하겠다는 뜻이다. 좋은 목표이며, 의학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다.
그는 또한 왜 연구하는 의사가 필요한지 강하게 주장한다. 의사 한 명은 수 백명 밖에 살릴 수 없지만, 연구의사는 전 인류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귀한 연구의사에 지원하는 학생이 왜 없을까? 그 이유는 서울대 학장의 인터뷰 초반에, 그가 연구의사에 대해 보여준 인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는 돈 잘버는 의사를 지향하는 바깥의 시각과는 다르게 서울의대인의 미래는 "배고프고 힘든 연구의사"라고 말한다. 슬픈 말이다. 연구의사는 서울의대의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연구직이라는 이유로 배고프고 힘들어야 한다는 그의 인식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연구직은 배고파야 한다는 표현이, 어떻게 서울대 교수라는 사람의 입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올 수 있을까? 이 말 속에, 한국사회가 학문의 기초인 연구에 대해 얼마나 천박한 수준의 인식을 지니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서울대학장의 인터뷰를 뜯어보면, 연구직은 서울대가 추구할 정도로 고귀한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 수 없는 배고픈 직업이다. 즉, 서울의대는 연구직으로 가는 의사에게 인센티브나 고소득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할 생각이 없다.
그는 학생들이 의료수가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돈 버는 학과로만 진로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즉, 그는 구조적인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학생들이 임상의를 하려는 이유는, 그 편이 덜 배고프기 때문이다. 직업 선택에서 경제성을 고려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이를 무시하고 세워진 정책은 모두 실패한다. 하지만, 서울대학장은 고귀한 목표를 내세우면서도, 개인적 성찰만을 강조한다. 미안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움직일 서울의대생은 단 한 명도 없다.
연구직에게 배고프지 않아도 된다는 시그널을 주고, 그들이 직업 속에서 자랑스러울 수 있을 만한 제도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배고픈 연구직이 되려는 청년은 단 한 명도 없다. 그건 꼰대 어른들의 착각이며, 고귀한 사회적 의료를 내세우는 서울대학장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교육이 아니라, 누군가 치열한 열정으로 선택한 직업이,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보상받는 시스템이다. 연구직 의사가 필요하다면, 의대 학부생들에게 연구나 윤리를 가르치려 하지 말고, 현재 연구직 의사로 재직 중인 이들에게 획기적인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면 된다. 그 방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연구직이 배고파선 안된다. 연구직이 배고픈 사회엔 미래가 없다. 그런 사회에선 연구를 빙자한 사기가 판을 치고, 모두가 연구보다는 돈을 버는 일에 매진하여, 장기적으로 아무런 모멘텀도 만들어질 수 없다. 연구의 가치를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 사회, 그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이 스카이캐슬과 서울의대다. 연구직이 가장 존경받는 직업이 되는 사회, 과학자가 되기 위해 스카이캐슬이 열리는 사회에서, 한국은 한번 더 꿈을 꿀 수 있을지 모른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