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안창현 기자] 세계적인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와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이 암호화폐 가치와 향방을 두고 격론을 펼쳤다. 지난해 10월 소셜미디어에서 공방을 벌인 이후 두 사람이 공개석상에서 토론하는 자리는 처음이다. 대표적인 암호화폐 비관론자인 루비니 교수가 현재 암호화폐 시장의 암울한 상황을 비판했다면, 부테린은 이더리움 생태계를 일군 개발자답게 암호화폐 기술의 미래 가능성에 주목했다.
4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분산경제포럼(Deconomy 2019)에 참석한 루비니 교수와 부테린은 '암호화폐의 본질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설전을 벌였다. 먼저 루비니 교수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에 대해 쓰면서 은행들이 월스트리트를 망치고 있다고 봤지만, 암호화폐는 그보다 더 문제가 심각하다"며 "가격이 1시간마다 변해 가치 저장의 기능을 못하고 조작 가능성이 많은 등 기존 금융시스템보다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운데)와 비탈린 부테린(오른쪽)이 4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2회 분산경제포럼에서 토론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부테린은 암호화폐 기술의 미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각국 정부가 기업 활동이나 정보 시스템 등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경제 영역에서 독과점, 중앙화된 기업 구조 등도 문제"라며 "앞으로도 이같은 기존 시스템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암호화폐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면 분산화된 금융 시스템은 물론, 비금융 영역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루비니 교수는 "암호화폐는 분산 시스템으로 운영되지 않는다"며 "채굴자와 거래소, 개발자들 모두 중앙화돼 있다"고 반박했다. 또 현재 법정화폐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그는 "수많은 곳에서 암호화폐들이 발행되고 있지만, 지난 한 해에만 암호화폐 가치는 97%가 사라졌다"며 "이런 양적 완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어떤 규칙도 없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부테린 역시 암호화폐 가치가 부풀려졌다는 데 동의했지만, 이는 초기 자산시장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성을 찾고 경제성도 개선될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두 사람은 암호화폐가 가진 익명성과 프라이버시 문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부테린은 "암호화폐 거래에서 프라이버시는 중요한 쟁점"이라며 "하나의 기관이 수억명의 거래에 접근할 수 있는 건 무서운 일이다. 자신의 거래내역에 대해 프라이버시를 가질 수 있는 건 암호화폐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금융 시스템의 불필요한 규제들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자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루비니 교수는 금융 거래에서 익명성은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며 정부 규제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 상에서 수백억달러 규모의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정부는 제대로 세금조차 부과할 수 없다. 횡령과 탈세, 인신매매, 테러 등에도 대응해야 한다"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익명성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이어 "금융 거래는 정부에 등록되고 모니터링 돼야 할 필요가 있다"며 "암호화폐가 다음 세대의 스위스 계좌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안창현 기자 chah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