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힙' 뮤직)'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세계, 시네마틱오케스트라

입력 : 2019-04-05 오후 4:59:05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글로벌 '힙' 뮤직은 영국 가디언이나 뉴뮤지컬익스프레스(NME), BBC Music, 미국 빌보드, 롤링스톤 등에서 나오는 소식을 토대로 해외 가수들의 신보나 공연 소식을 선보이는 코너다. 이 코너에서는 해외에서 멋지거나, 새롭거나, 주목 받는 뮤지션들을 조명한다. [편집자 주]
 
그들의 소리에선 종종 낙엽이 나뒹굴었다. 쓸쓸하고 슬픈 무채색 풍경이 무한한 공간감 속에서 여기 저기를 배회하며 거닐었다. 사랑과 아픔으로 점철된 생의 굴곡진 이야기들은 고즈넉이 그 소리를 타고 일렁인다. 하루종일 구슬피 울어대는 것처럼 보이는 집의 대문('That Home')과 돈이 없을 때 나를 떠나가는 누군가들('Burn Out'), 그리고 먼지로 돌아갈 미래에 대해 사색(곡 'To Build a Home')하는 시간들.
 
영국 애시드 관현악 재즈 밴드 '더 시네마틱 오케스트라(The Cinematic Orchestra)'가 새 앨범 '투 빌리브(To Believe)으로 돌아왔다. 2007년 '마 플뢰르(Ma Fleur)' 이후 무려 12년 만에 낸 정규 앨범이다.
 
더 시네마틱 오케스트라는 비트메이커인 제이슨 스윈스코와 그의 오랜 친구 돔 스미스로 구성된 2인조 프로젝트 밴드다. 1999년 발표한 데뷔작 '모션(Motion)'이 평론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스탠리 큐브릭과 같은 거장 영화감독들로부터 주목받았다.
 
이후 2007년 발표한 정규작 '마 플뢰르(Ma Fleur)'가 대중적으로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게 된다. 이 앨범 타이틀 곡 '투 빌드 어 홈(To Build A Home)'은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업체 스포티파이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꼽히기도 했다. 최근에는 디즈니의 자연다큐멘터리 '더 크라임슨 윙(The Crimson Wing)'의 음악감독을 맡아 런던 메트로폴리탄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했다. 주로 삶, 사랑 등 인류에 얽힌 이야기들을 그들 특유의 고독하고 쓸쓸한 사운드로 표현해낸다.
 
시네마틱 오케스트라 12년 만의 새 앨범 '투 빌리브'. 사진/필뮤직
 
인간과 삶을 읊조려 온 그들이 이번 앨범에서 꺼내든 명제는 '믿음'이다. 모든 생명의 전제 조건은 믿음이란 메세지를 근원 삼아 사람들이 어떤 것을 믿는지, 또 그런 것을 왜 믿는지 그 본성을 추적해 들어간다.
 
앨범을 돌리는 첫 순간부터 '믿음'에 관한 이 밴드 만의 쓸쓸하고 황량한 정서가 귀를 휘감는다. 심플한 어쿠스틱 기타 튕김으로 시작하는 첫 트랙('To Believe')은 믿음이 붕괴된 하나의 세계를 설정한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인간으로서의 고독과 아픔을 인식하지만 '나는 당신이 믿고 있는 누군가가 될 수 있기에' 일말의 희망은 남겨둔다. 세계적 싱어 모세 섬니의 초현실적 팔세토 가창이 그 미약한 희망을 부여잡고, 노래한다.
 
박수소리 같은 리듬으로 전환하는 2번 트랙 'A Caged Bird / Imitations of Life (feat. Roots Manuva)'은 중후한 랩송으로 전개된다. 우리에 갇힌 새처럼 스스로를 갇혀 있지 말라는 곡은 믿음이 곁에 있음을 주변에서 확인해보라고 조언한다. 
 
뒤이어 '내 손을 잡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함께 살펴보자'('Wait For Now / Leave The World')는 서정은 '모든 사람들이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는 판타지 세계'(Zero One / This Fantasy)로 넘어가고, '비가 우리의 고통을 씻어 주길'(곡 'Promise') 기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시네마틱 오케스트라. 사진/필뮤직
 
재즈 장르를 기초로 댄스와 일렉트로닉을 아우르는 이 현대적인 음악에서 무엇보다 특징적인 건 밀물, 썰물처럼 느껴지는 키보드 멜로디의 순환이다. 소리의 질감을 강조해 공간감을 조성하는 엠비언트 사운드와 이를 퍼커션으로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조화도 돋보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그의 이번 음악적 스타일을 두고 '아이슬란드 뮤지션 올라퍼 아르날즈' 같다며 별 5개 중 4개를 부여했다. 
 
모든 이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판타지 세계를 꿈꾼다는 건 우아하고 낭만적이며 아름답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딛고 사는 이 땅에서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현실 자각은 괴롭고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온갖 혐오 표현과 불신으로 도배돼 버린 오늘날 우리 세계의 혼란과 파괴가 그것을 말해준다.
 
음악으로나마 그런 세계에 닿을 수 있는 날을 꿈꿔볼 뿐이다. 마지막 트랙 '어 프로미스(A Promise)'의 울렁거리며 '탁' 하고 터지는 전자음들, 그것은 이 혼돈의 세계가 다시 질서를 이룰 미래의 어느 날을 연상시킨다. 겨울이 지나고 어느 순간 맞닥뜨리게 되는 봄 처럼, 전자음들이 '탁'하고 벚꽃처럼 환하게 흐드러진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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