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차기 대선에 대비해 경제성과를 강조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롯데그룹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다.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는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을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만나 치하했다. 삼성이나 LG 등 다른 대기업도 역내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국내 총수를 만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 주목된다. 미중 무역분쟁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경제동맹을 무기로 내세우면서 중국에서 사드 이슈로 퇴출되다시피 한 롯데를 감싸는 모습이 묘하게 부각된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이 현지 시간으로 지난 13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투자 확대와 협력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재계 총수가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면담한 최초 사례다.
신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난 9일 롯데케미칼이 준공한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 에탄크래커 공장을 설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투자에 대해서 고맙다고 화답하면서 생산품에 대해 질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신 회장이 롯데그룹의 사업 현황과 롯데뉴욕팰리스호텔 사업에 관해 설명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투자였다" , "전통이 있는 훌륭한 건물이니 잘 보존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신 회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양국의 관계 강화를 위한 상호 협력 방안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면담은 차기 대선을 앞두고 경제성과가 급해진 트럼프 대통령의 처지가 작용한 듯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 회장과 면담 후 트위터를 통해 “한국 기업의 최대 규모 대미 투자며, 미국민 일자리가 수천개 늘어날 것”이라면서 “한국 같은 훌륭한 파트너는 미 경제가 어느 때보다 견조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또 “롯데그룹의 대미 투자는 현명한 결정”이라며 “이 투자는 미국의 승리이자 한국의 승리이고 양국 동맹의 굳건함의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이날 면담 자리에는 매슈 포틴저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과 조윤제 주미대사, 김교현 롯데화학BU장, 윤종민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장 등도 함께 참석했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9일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에 있는 에탄크래커 공장 준공식을 진행했다. 이번 공장에 투입된 사업비는 총 31억달러(약 3조6000억원)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대미 투자며, 역대 한국 기업으로는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은 롯데그룹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면서 실비아 메이 데이비스 백악관 전략기획 부보좌관을 준공식 현장으로 보내 축전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번 설비를 통해 롯데케미칼은 연간 100만톤의 에틸렌, 70만톤의 에틸렌글리콜을 생산하게 된다. 현재 시황 기준으로 연간 약 8000억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롯데케미칼은 현지 상황을 고려해 에틸렌 40만톤을 추가로 생산하는 계획도 세웠다. 앞으로 저가의 셰일가스를 활용해 에틸렌을 생산, 사업 수익성을 높일 계획이다.
롯데그룹은 지난 1991년 롯데상사를 시작으로 롯데케미칼, 롯데면세점, 롯데호텔, 롯데글로벌로지스 등 5개사가 미국에 진출해 있다. 현재 앨라바마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생산기지, 롯데뉴욕팰리스호텔, 괌 공항 롯데면세점 등이 운영되고 있다.
롯데그룹은 총 투자 규모가 40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미국에서의 사업을 매년 확대하고 있다. 이는 중국에서 롯데그룹 내 또 다른 핵심 기반인 유통 부문이 축소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2017년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 보복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롯데백화점은 점포를 줄이고 있으며, 롯데마트는 철수했다.
롯데그룹은 이번 공장 준공을 계기로 그룹 내 핵심 기반 중 하나인 화학 부문을 집중해서 키워나갈 방침이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그룹의 지주 체제 안정과 그동안 유통, 식품에 편중된 사업을 다각화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롯데지주에 편입됐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13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매슈 포틴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김교현 롯데화학BU장, 조윤제 주미대사,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윤종민 롯데지주 경영전략실장(사진 왼쪽부터)이 면담하고 있다. 사진/롯데지주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