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글쓰기 인생'은 2001년 전후로 나뉜다. 당시는 윤 전 대변인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후보 캠프에 들어갔던 해다.
10여년 이상 정치권에서 '제법 글 좀 쓴다'는 평을 들어왔던 그였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외부에 기고할 그의 첫 원고를 다섯 줄도 읽지 않고 반려하고 말았다.
윤 전 대변인은 당시 글의 문제점을 두 가지로 정리한다. '쓸데없는 군더더기'와 '하나 마나 한 이야기'. 그는 "노 전 대통령은 중언부언, 하나 마나 한 말, 남의 말로 글쓰기를 싫어했다. 그와 함께 하며 '좋은 문장'이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윤 전 대변인이 자신의 경험을 엮어 묶은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을 펴냈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방법, 그 중에서도 '고치기'를 집중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참여정부 시절 대변인, 제1부속실장, 연설기획비서관을 지내며 '노무현의 필사'로 불리기까지 글 사례와 노하우를 수록했다. 2012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후보 수락 연설과 2017년 취임사 초고를 다듬은 경험도 실렸다. 좋은 글을 위해서 그는 "잘 쓰기보다 잘 다듬는 게 중요하다"고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좋은 글쓰기'의 절반은 '좋지 않은 문장'을 버리는 습관이다. 책 곳곳에 소개된 대부분의 글 고치기 기술이 어휘나 표현보다 문장 덜어내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문장은 '단문'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 여기서 '단'은 '짧은 단' 자가 아니고 '홀로 단' 자다. 주어와 서술어가 각각 하나씩 있어 이들의 관계가 한 번만 이뤄지는 문장을 뜻한다. 단문 위주로 가되, 복문을 써야 한다면 가급적 대등절이 이뤄진 대구를 쓰면 좋다.
가령 '산은 높다', '바다는 넓다'는 단문이다. '산은 높고 바다는 넓다'는 대구를 활용한 복문이다. 저자는 이 둘의 조화가 글의 맛과 힘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복문 중에는 한 쌍의 주어, 서술어가 문장 안 특정 명사를 수식하는 포유문도 있다. 이는 쓸데없는 군더더기로, 가급적 절제하는 게 바람직하다. 저자는 화려한 수식어나 군더더기를 '2분만 돌려도 되는데 4분이나 돌린 전자레인지 안 음식'에 비유하기도 한다.
표현의 간결성이 해결되면 이후에는 구체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 마나한 이야기는 제거하고 관찰과 취재, 고유명사 활용 등으로 글에 설득력을 높이는 게 좋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취임사로 제2차 세계대전과 미국의 남북전쟁을 각각 노르망디, 게티스버그에 비유하며 전쟁의 구체성을 환기시켰다. 저자 역시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초안을 작성할 때 이 방법을 활용했다고 회고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 필요하면 곧바로 워싱턴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문장 다듬는 기술을 관통하는 건 글에 관한 저자 만의 '열렬한' 고찰과 경험담이다. 어린시절 달달 외우던 '국민교육헌장'부터 노 전 대통령의 동정을 기록한 '국정일기', 닷새 만에 3000자로 간결히 정리한 문 대통령의 취임사 초안…. 2001년 '글쓰기 인생'을 뒤바꾼 사건 이후 글의 여로가 펼쳐진다.
초고 쓰기에 전소될 기세로 덤벼들던 그는 이제 퇴고에 4배의 시간을 들일 만큼 열중한다. '간결하고, 구체적으로' 고치고 다듬은 글들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을 단련하듯이 문장을 다듬어보자. 세상을 바꿔나가듯이 글을 고쳐보자.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쓰고 다듬는 과정은 결국 '나와 세상을 바꾸는 여정'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 사진/위즈덤하우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