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빵 먹으며 ‘미친세상’ 논하다, 브로콜리너마저ⓛ

9년 만에 정규 3집 ‘속물들’ 발표…"뮤지션 둘러싼 '굴레' 생각했어요"

입력 : 2019-05-25 오후 5:06:58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청룡동 쑥고개를 찾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에 이들의 초창기 작업실이 있었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아. 어쩌죠? 작업실이 사라져 버렸어요.”
 
지난 21일 오후 4시 반 서울 관악구 청룡동의 한 언덕배기. 빽빽한 아파트 밀림을 등진 이들이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얼굴에 아쉬움이 물에 탄 수채화 물감처럼 번져간다. “재개발 돼서 지금은 짐작조차 할 수 없으실 것 같네요. 그 때 그 건물 지하에 있었거든요.”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그 곳은 시장이었다. 천막들이 둘러쳐진 언덕길 위로 사람 냄새가 정겹게 퍼지던 곳. 언덕배기 장터길을 따라 중턱까지 올라가면 이들의 작업실이 있었다. 1000원에 5개씩 뭉텅이로 팔던 빵을 나눠 먹고 음악 했던 곳. 브로콜리너마저(덕원<베이스·보컬>, 류지<드럼·보컬>, 향기<기타>, 잔디<건반>) 음악이 세상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기도 전의 일.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얽힌 추억들을 쏟아낸다.
 
“난 비오는 날 악기 고무줄에 칭칭 감아 구르마로 끌고 가던 거, 잊혀지지가 않는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우리 컴퓨터도 들고 지하철 탔잖아. 첫 EP 녹음 때.” “아 맞아, 맞아. 그땐 차가 없어서. 아… 이런 되게 없어 보인다.” “그거 기억나? ‘브로콜리빵마저’ 사진. 일렬로 서서 빵 먹던 거!” “아 맞아. 그때 그 사진 엄청 쪼그만 똑딱이 쿨픽스로 찍었었지.” 14년 전처럼 준비해 온 빵을 가방에서 꺼낸 덕원 덕에 모두가 아이처럼 까르르 웃는다.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청룡동 쑥고개에서 빵 먹는 포즈를 취하는 브로콜리너마저 멤버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네 멤버들은 이 곳에서 처음 만났다. 2005년 서울대 노래 동아리 메아리에서 활동하던 덕원과 잔디가 결성한 팀에 이듬해 류지, 향기가 들어왔다. 류지와 향기가 들어오기 전, 멤버들이 묘한 밴드 이름을 지었다. “(덕원)사실 별 뜻이 없어요. 당시 의미 없고 묘한 단어로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핸드폰으로 한참 찾더니 당시 노트장에 낙서처럼 휘갈긴 단어들을 보여준다. ‘왕건이’, ‘브로콜리’, ‘너마저’. 엉뚱한 단어들이 한데 엉켜있다. “(덕원)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저희가 어떻게 뭔가를 해보겠다고 모인 팀이 아니란 거예요.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하자거나 목표 같은 게 애초부터 없었다는 거죠. 밴드명도 그랬고.”
 
“(향기) 처음 오디션 보러 온 날, ‘앞으로 잘 해보자’ 그런 얘기도 없었어요. 그냥 합주 마치고 호프집으로 바로 가지 않았나 우리?” “(류지)긴장해서 연주하고 된 건가, 안 된 건가 하고 있는데 ‘다음 합주는 언제할까요?’라고만 왔었죠. 그래서 된 건가 싶었어요.” “(덕원)‘오늘부터’라 얘기하지도 않고 연애하듯 시작된 거였죠.”
 
2006년 밴드는 그렇게 이 곳에서 처음으로 음악을 했다. 음악이라기보다는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놓는 진솔한 이야기에 가까웠다.
 
멜로디가 붙은 언어는 동시대 청춘들의 아픔을 매만졌다. 까끌까끌하지만 부드럽게. 사람에 부딪히는 이들에게 ‘너만 그렇지 않다’며 다독였고, 꿈의 여로에서 비틀거리는 이들을 위로했다.(2008년 정규 1집 ‘보편적인 노래’) 오늘날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 ‘미친 세상’에서 행복해야 한다 (2010년 정규 2집 ‘졸업’)고 했다.
 
초기 작업실이 아파트 밀림으로 바뀌어 버린 ‘상전벽해’의 시간. 이제 그 20대 청춘들은 어느덧 30대 중반에 들어섰다. 세상이 바뀌듯 밴드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멤버 모두 전업 음악인으로 큰 인생의 결정을 내렸다. 덕원과 잔디는 결혼해 가정이 꾸렸고, 아이도 키우고 있다.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사진/스튜디오브로콜리
 
‘미친 세상’에서 ‘행복하라’던 그들의 9년은 안녕했을까.
 
“(잔디)이 ‘미친 세상’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고, 상처 받지도 않고, 그렇게.” “(향기)지금은 어떤 세상에든 미친 부분은 있다고 생각이 되는 것 같아요. 꼭 뮤지션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그렇게 생각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덕원은 뮤지션을 특이하게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도 부대꼈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때마다 자신을 특별하게 보는 이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고 털어놓는다. “(덕원)음악이 특별하게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듣는 분들에게는 재미있게 다가갈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음악 만드는 사람도 결국은 사람이거든요. 비슷한 또래 사람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멤버들이 덕원의 말에 설명을 더한다. “(류지)생활 문제를 이야기하는 자체를 금기시해야 한다고 하나요? 음악하는 사람이 돈 얘기를 하면 어떻게 하냐, 그런 거에 신경을 쓰면 어떻게 하냐. 그런 말씀들을 주변에서 많이 하시죠.”
 
“(잔디)보통 순수하게 음악 해야지, 하죠.” “(향기)나이 서른이 넘었는데, 뭐 하는거니 아직도 비정규직이니 하기도 하고요.”
 
덕원은 지난 시간 동안 이런 ‘굴레’에 대해 생각해왔다. 뮤지션도 사람이고 생활인인데 프레임을 갖고 보는 시선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난 17일 9년 만에 발매된 정규 3집 ‘속물들’을 건드리는 근원적 문제 의식이다.
 
“(덕원)특히 인디밴드들에게는 그런 ‘굴레’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연예인이야 돈 얘기해도 되지만 너네는 착해야 되는 거 아니야? 하는 게 있거든요. 하지만 저희도 생활인이니까, 어느 순간 ‘왜 그런 시선에 맞춰 살아야 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편한 방식(음악)으로 그런 사회 시선과 싸우고 싶었어요. 삶의 변화가 이번 노래를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됐어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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