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 같던 '삼성 충정문화' 균열…이재용, 이번에는 위험하다

'삼바 사건' 핵심 참고인들 "내 잘못 아니다"…심복들도 '총대 메기' 거부

입력 : 2019-05-27 오전 2:00:00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철옹성 같던 총수에 대한 삼성그룹의 ‘충정’문화가 균열을 보이고 있다. ‘국정농단’, ‘삼성 노조 파괴’, ‘삼바 회계사기’의혹에 대한 수사가 이어지면서 검찰의 칼끝은 시종일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겨누고 있다. 그러나 검찰이 찔러 넣은 칼날은 시간이 갈수록 이 부회장을 향해 더 깊이 박히고 있다. 피의자로 조사를 받은 중간 임원들이 전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사기(분식회계)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한 검찰 간부는 최근 "증거인멸과 관련해 조사를 받은 피의자들이 '대부분 윗선 지시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본인에 대해) 방어적으로 얘기하지 않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들 그렇게 한다"면서 "개인적인 시간차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국정농단' 뇌물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18년 2월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 중 삼성의 핵심 피의사실인 '증거인멸'과 관련해 지난 25일까지 총 7명을 구속했다. 삼성바이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 임원 2명과 삼성바이오 팀장급 직원 1명, 삼성전자 상무 2명과 부사장 2명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삼성전자 지시에 따르 증거인멸이 이뤄졌다는 큰 틀에 대해 피조사 입장은 대체로 삼성바이오와 삼성에피스 중 어느 쪽 사람이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면서도 "그러나 지금 구속된 사람들은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 아예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또 "구속 전 '자기판단'으로 개인적으로 했다고 한 경우 많았지만 구속 후에는 그런 입장을 대부분 철회하고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5일 구속을 피한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도 검찰에서 비슷하게 진술했다고 한다. 수사팀 관계자는 "(김 대표도) 본인 책임을 인정하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도 같은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송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018년 5월5일자 회의의 소집 및 피의자의 참석 경위, 회의진행 경과, 그 후 이루어진 증거인멸 내지 은닉행위의 진행과정, 피의자의 직책 등에 비추어 보면 피의자의 본건 증거인멸교사의 공동정범 성립 여부에 관해 다툴 여지가 있고, 피의자의 주거 및 가족관계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그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반면,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부사장과 박문호 삼성전자 부사장에 대해서는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삼성바이오와 삼성전자의 책임을 구분한 것이다. 즉, 증거인멸은 삼성바이오가 아닌 삼성전자 차원에서 지시한 것으로 인정된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를 축으로 한 삼성그룹 내 눈물겨운 충정은 오래 전부터 있어 온 한 문화다. 최근 사례만 봐도 그렇다. 2003년 처음 수사가 시작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을 통한 경영권 세습 의혹' 사건 때에도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핵심 피의자였지만 허태학, 박노빈 두 전·현직 사장이 전면에 나서 본인들 책임으로 선을 그었다. 이때 허 전 사장 등의 뒤에는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있었다.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검찰 수사를 이어받았지만 이 회장은 결국 기소되고도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 받았다.
 
'국정농단' 사태 때에는 최지성 미래전략실장이 나서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해 이 부회장 대신 '총대'를 멨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대사실을 비롯해 박영수 특검팀이 삼성 내부 인사들로부터 여러 진술을 확보하면서, 결국 이 부회장은 구속기소됐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지금은 대법원에서 소송이 계속 중이다.
 
한 고위 검찰 수뇌부 관계자는 "검찰로서도 삼성 사건이 어려운 것은 내부 단속이 잘 됐기 때문이다. 역대 권력형 비리나 기업범죄 수사에서는 내부자들의 진술이 결정적인 때가 많았다"면서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삼성도) 관련 피의자 또는 참고인들 진술이 단서가 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검찰 고위 간부도 "이번 '삼바'사건 수사는 과거나 또는 다른 사건과 비교해볼 때 확실히 달라 보인다"고 말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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