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동현 기자] 30년 만에 개정된 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ICD-11)에 '게임장애(Gaming Disorder)'가 포함되며 국내 게임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임장애 질병화를 반대하는 집단은 게임 이용의 중독성을 방어할 논리를 찾으며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8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HO 72차 총회 전체 회의에서 ICD-11을 보고한다. 이미 지난 25일 총회 B위원회에서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해 절차상 마무리를 짓는 단계다. ICD-11에 포함된 게임장애 질병은 정신·행동·신경발달 장애 영역의 하위 항목으로 '6C51'이라는 질병코드를 받았다. WHO는 오는 2022년부터 ICD-11을 194개 WHO 회원국에 적용·권고하고 각 나라는 게임장애에 대한 질병 정책을 펼칠 수 있다.
국내 게임장애 질병 도입까지는 약 6년의 시간이 남았다. 통계청이 내년 진행할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게임장애를 포함하지 않겠다고 밝힌 덕이다. KCD 개정 주기가 5년임을 고려하면 2025년에야 게임장애 질병의 국내 표준 분류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넥슨 SNS 페이지에 올라온 게임장애 질병코드 등재 반대 이미지. 사진/넥슨 페이스북
게임업계는 남은 기간 게임장애 질병분류의 비과학·불합리성을 입증하기 위한 방어 논리 찾기에 나선다. ICD-11 게임장애는 게임 자체를 중독 물질로 규정하지 않고 게임 과몰입 등 이용행태를 행위 중독으로 명시했다. 즉, 게임 이용 행태별로 질병으로 분류할 방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셈이다. 게임개발자연대는 "ICD-11 등록으로 국내에서 게임을 중독 물질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며 "게임 기관·전문가들은 '게임 관련 질병'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 산업의 잘못은 없었는지 등을 돌아보고 제대로 된 방어 논리를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게임장애 질병 등재에 반대 목소리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7년 말 WHO가 ICD-11에 게임이용장애를 포함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한국게임산업협회를 중심으로 지난해 초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게임장애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자리가 여러 차례 마련됐다. 미국·유럽·캐나다 등 각 나라의 게임산업 관련 협회와 공동 대응을 시작하며 반대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다만 각 나라의 이해 관계가 다르고 공동 대응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이 오히려 부정적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의견들이 나오며 효과적인 공조를 발휘하지 못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정부 부처 관계자들은 국내 토론회에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국내에만 머물렀을 뿐 글로벌 공동대응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한 나라에서 게임에 대한 서로 다른 인식을 가진 부처가 여럿 존재하다 보니 정부 차원의 글로벌 대응은 사실상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게임 진흥 정책은 문체부가 담당하지만 셧다운제와 같은 규제 정책은 여성가족부가 주도하는 등 정부 차원의 하나된 입장을 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편 보건복지부도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관리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할 예정이다. 먼저 2022년 WHO ICD-11 도입에 맞춰 게임 이용을 어느 기준으로 질병으로 분류하고 관리할지 연구에 착수한다. 다음달 게임·의료 분야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민관협의체 신설을 추진한다. 한 정신간호학 박사는 "게임 자체의 문제를 논하는 게 아니라 과몰입에 따른 일상생활 관리가 필요한 부분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며 "게임을 건강하게 활용하는 것까지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지난 3일 서울시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서 열린 'WHO 게임 질병코드 분류 추진, 무엇이 문제인가' 긴급토론회. 사진 가운데가 위정현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 위원장. 사진/김동현 기자
김동현 기자 esc@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