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퀸' 머큐리 된 김종서…폭염 이긴 펜타포트, '록은 죽지 않았다'

'돈 스탑 미 나우'에 런던 웸블리로 변한 송도…YB·해리빅버튼 '록 열기' 이어
밤에는 드론과 불꽃 쇼로 화려…오는 11일까지 국내외 60여팀 출격

입력 : 2019-08-10 오후 3:34:41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2019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이 송도 달빛 축제공원에서 9일 막을 올렸다. 최근 록 뮤직 페스티벌의 전반적인 흥행 부진 속 최후 '구원투수'로 남은 펜타포트는 이날 국내 최장수 록 페스티벌다운 위용을 뽐냈다. 밤낮으로 30도가 넘는 폭염 날씨에도 현장은 더 뜨거운 '록 스피릿'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이날 현장에서 '록의 열기'에 불을 지피기 시작한 건 오후 4시30분 무렵 무대에 선 김종서였다. 
 
펜타포트 메인무대에 오른 김종서. 사진/PRM
 
'한국 밴드의 전설' 시나위와 부활의 보컬이었던 그는 한국 헤비메탈 1세대격 뮤지션이다. 신대철과 김태원, 서태지 등 수많은 국내 뮤지션들이 3옥타브대를 넘나드는 그의 보이스에 반해 함께 작업을 제안해왔다. 레드 제플린 로버트 플랜트 커버로부터도 '아시아 최고'라는 찬사를 끌어 낼 만큼 국내에선 대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1992년부터는 단순히 록의 영역에만 구애 받지 않는 솔로 창작 활동으로 대중적 뮤지션으로서 입지를 구축해왔다. '아름다운 구속', '겨울비', '대답 없는 너', '영원' 등 대표곡들은 대체로 귀에 익은 선율과 가사가 특징인 곡들이 많다.
 
이날 검은 선글라스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등장한 김종서는 1972년 레드 제플린의 명곡 '이미그런트 송(Immigrant Song)'을 부르며 무대에 올랐다. 국내 헤비메탈 1세대 뮤지션 답게, 유려하게 고음을 뽑으며 서서히 록의 열기를 끌어올렸다. 
 
'김종서'란 정감 있지만 묵직한 필기체를 뒤로 하고 그는 자신의 삶과 사랑에 새겨진 생의 언어들을 연주하고 노래했다. 어쿠스틱 기타를 메고 '겨울비' 후주를 부를 때 만큼은, 그 습하고 무더운 현장의 온도가 순간 식혀지는 느낌이었다. "오늘 폭염 경보가 내렸는데도 여러분 정말 대단하십니다. 여러분들이 우리나라 락을 살리는 것 같아요. 더우니까 쭉쭉 가겠습니다. 락 앤 롤."
 
김종서. 사진/PRM
 
고 김광석의 '일어나', '플라스틱 신드롬', '아름다운 구속' 까지 쭉 달린 후, 앙코르 요청에 바로 나온 그는 "조금 뜸 들이고 나와야 멋있지만, 관객 여러분 더울까봐 조금 일찍 나왔다"며 웃어보였다. 
 
익숙한 멜로디가 대형 스피커를 통해 심장을 고동쳤다. 갑작스레 송도가 런던 웸블리 구장으로 변하는 목도의 순간. 김종서의 고음으로 뽑는 영국 록 밴드 퀸의 '돈 스탑 미 나우(Don't stop me now)'. 김종서는 무대를 종횡하며 프레디 머큐리로 분했고, 그 폭발력은 엄청났다. 국내 헤비메탈 전설이 부르는 '전설의 노래', 한국적 정서를 머금은 이날 이 '돈 스탑 미 나우'는 올해 펜타포트를 여는 축포가 됐다.
 
헤리 빅 버튼. 사진/PRM
 
김종서의 바통은 바로 옆 서브 스테이지에서 국내 대표 하드록 밴드 해리빅버튼<이성수(보컬/기타)·김인영(베이스)·유연식(드럼)>이 이어받았다. 
 
2011년 결성된 밴드는 포효하는 중저음 보컬과 독창적인 기타 리프가 인상적인 팀이다. 2012년 ‘KBS TOP 밴드’ 시즌 2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이후 8년 간 국내외로 활발하게 활동해오고 있다. 
 
이날 불기둥을 앞세 운 밴드는 드럼과 베이스, 기타의 기본 밴드 셋 만으로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월드컵 주제가를 듣는 듯한 드럼의 '둥둥' 소리에 맞춰 관객들은 박수를 치고 단결했다. 곡 '커피, 시가렛츠 앤 락앤롤(Coffee, Cigarettes and Rock 'N' Roll)'에 관객들은 불볕 더위에도 깃발을 흔들고, 몸을 부딪히는 슬램을 마다 않았다. "자. 여러분 남은 땀 다 뽑아 내고 갑시다! 쓰러지지 마세요. 끝까지 버티세요. 락 앤 롤"
 
해리 빅 버튼. 사진/PRM
 
예열된 첫 날의 분위기를 정점으로 이끈 건 올해 데뷔 24년 차 '국민 밴드' YB였다. 7시 반 무렵 YB(윤도현[보컬 겸 기타], 박태희[베이스], 허준[기타], 김진원[드럼], 스캇 할로웰[기타])는 확성기로 노이즈 음을 마이크로 대고 공원 일대에 울리며 무대에 등장했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꺼야 노래하며 춤추는 나는 아름다운 나비"( 곡 '나는 나비')
 
교주 혹은 지휘자처럼 손을 내젓는 윤도현에 객석에 수십번이 넘는 둥그런 원형 존이 형성되고 수천, 수만명의 사람들이 몸을 맞부딪치며 짜릿함을 느꼈다. 
 
"락 페스티벌.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깁니다. 습하고 무덥지만 저희는 오늘 '쳐' 달립니다.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YB. 사진/PRM
 
24년차 이 중견 밴드는 확실히 내공이 달랐다. 그들은 라이브를 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걸 넘어 아예 '즐기는' 차원으로 걸음을 옮긴 밴드였다. 하모니카와 탠버린을 신명나게 치는 윤도현과, 서로의 손가락 빠르기를 '티키타카'처럼 주고 받는 허준과 스캇 할로웰, '위플래시'처럼 드럼 삼매경에 빠지다 웃옷을 벗어 던지는 김진원…. '담배 가게 아가씨'와 '난 멋있어', 너바나의 '브리드(Breed)' 커버까지, 공연이 절정에 이를 때 쯤 관객들은 무대 앞쪽부터 앉았다 일어나는 파도로 화답했다.
 
"올해 10월 정규 앨범이 나올 YB입니다. 시대 흐름에 편승해 유튜브도 하고 있으니 구독과 좋아요 많이 부탁드립니다."
 
YB. 사진/PRM
 
록 페스티벌 환경이 척박했던 1999년부터 시작한 펜타포트는 매년 다소 하드한 음악 위주의 콘셉트로 국내 록페의 독보적인 브랜딩을 해왔다. 해마다 헤드라이너를 국내의 대표 밴드들로 세우며 국내 록의 역사와도 명맥을 함께 해왔다. 들국화와 서태지, 넬, 자우림, 국카스텐 등이 '헤드라이너'로 축제를 빛내며 14년의 시간을 함께 달려왔다. 이날 현장은 낮부터 저녁까지 폭염이 계속됐으나, 록의 중심을 지켜온 굵직한 국내 팀들과 질서를 지키며 흥을 발산하는 관객들의 뜨거운 열기를 막지는 못했다. 그곳에서 '록은 죽지 않았다'.
 
기차놀이 하며 원형 존을 만드는 관객들. 사진/PRM
 
밤 늦게까지 후덥지근함은 가시질 않았지만, 이 날 송도의 밤은 록으로 찬란했다. 
 
퀸의 '원 비전(One Vision)'에 맞춰 드론 100대가 펜타포트 로고와 기타를 멘 사내를 그리더니, 수십번의 불꽃 축포가 하늘을 수놓았다. 대만 5인조 록밴드 선셋 롤러코스터가 나른한 사랑의 노래들을 연주하고, 미국 밴드 더 프레이가 뭉근한 피아노 멜로디에 감미로운 보컬을 얹은 서정미로 관객들을 적셨다.
 
펜타포트는 오는 11일까지 계속된다. 10일에는 북아일랜드 팝 밴드 투 도어 시네마 클럽, 일본 시부야케이 효시로 불리는 코넬리우스, 미국 밴드 어게인스트 더 커런트를 포함해 브로콜리너마저, 내귀에도청장치, 잠비나이, 최고은, 로큰롤라디오, 로맨틱펀치 등이 무대에 오른다. 마지막 날에는 영국 4인조 더 뱀프스를 비롯해 크라잉넛,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9와숫자들, 노선택과소울소스, 새소년의 황소윤 등이 무대에 오른다. 피날레는 미국 록 밴드 위저가 장식한다.
 
드론 100여개가 송도 하늘 위에 그린 펜타포트 로고. 사진/PRM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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