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109년 전 국권피탈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국치길이 조성됐다. 서울시는 109년 전 한일병탄조약이 공포된 국치일인 29일 민족의 아픔이 서려 있는 남산 예장자락에 약 1.7㎞에 이르는 국치길 조성을 완료하고, 독립유공자 후손 등과 함께 국치의 현장을 걷는 역사탐방 ‘국치일에 국치길을 걷다’를 개최한다고 28일 밝혔다.
국치길은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된 한국통감관저 터에서 시작해 김익상 의사가 폭탄을 던진 한국통감부 터와 노기신사 터, 청일전쟁에서 승전한 뒤 일제가 세운 갑오역기념비, 경성신사 터를 거쳐 조선신궁에 이르는 길로, 길 마지막에는 지난 14일 위안부 기림의 날에 서울시에서 설치한 서울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를 만날 수 있다.
일제는 서울(한양)의 얼굴 격인 남산에 조선신궁을 설치하고 식민지 침략자인 메이지 일왕과 일본 건국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숭배케 했다. 한국 통치의 중추인 통감부를 세우고,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조성한 곳도 남산이었다. 남산은 나라를 잃고 국토와 주권을 내주어야 했던 치욕스런 장소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중앙정보부가 설치돼 100년간 시민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장소이기도 했다.
서울시는 국치길을 조성하면서 ‘길’을 형상화하고, 역사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한글 자음 ㄱ 모양의 로고를 국치길 보도블록 곳곳에 설치하고, 시민들이 발걸음을 옮기며 ㄱ자 로고를 보는 것 자체로 치욕스러웠던 시대의 감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재구성했다. 한글 자음 하나만으로 국치길의 정체성을 분명히했다.
ㄱ자 로고 안쪽엔 ‘국치길 1910/1945’를 함께 넣어 역사의 현장성과 시대의 의미를 간략하지만 명료하게 알 수 있도록 했다. 국치길 코스는 남산 예장자락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추진 중인 남산의 숨은 역사 조사결과를 토대로 역사 현장을 연계해 구성했다. 서울시는 오랜 기간 동안 시민에게 드러나지 않은 채 위락 공간으로 인식되어 온 남산 예장자락 공간의 특성을 고려해 국치길의 각 역사 현장에 ㄱ 모양의 스탠드형 안내 사인을 설치했다. 기본 형태에 설치지역 각각의 지형적 특성(등고선)을 반영하고, 착시효과를 활용해 일그러진 역사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완성된 국치길이 역사의 아픈 상처를 시민들이 직접 느끼고 기억하며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하는 첫 걸음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예장동 일대에서 열린 ‘병탄조약 체결된 날, 독립유공자 후손과 함께 국치길을 걷다’ 행사에서 김구 선생의 증손자인 김용만(왼쪽 두번째) 씨와 구한말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 독립유공자들의 후손들이 남산 국치길을 걷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