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소음처럼 사라졌을 대중음악의 편린, 그 열렬한 기록

두툼한 '음악 애정'으로 쓴 벽돌 두께 책…"솔직함은 음악 비평의 자존심이자 윤리"
음악편애|서정민갑 지음|걷는사람 펴냄

입력 : 2019-09-20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490페이지에 달하는 ‘장서(長書)’는 거의 벽돌이었다. 손 한 줌 가득 들어오는 이 책의 두툼함은, 결국 저자의 깊은 ‘음악 애정’에 비례했음을 덮은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됐다. 어쩌면 이 시대에 소음처럼 사라졌을지 몰랐을, 혹은 존재했는지조차 몰랐을 편린의 음악들을 끄집어 그는 대중음악사로 기록하고야 말았다.
 
특정 장르 편중의 음악만 매대에 올려지는 ‘자본 권력’ 시대에 저자는 좌우되지 않는다. 시대의 공기를 환기시키고 사람과 삶을 되새기는 ‘사유의 문’으로서 음악을 듣고 느끼며 분석한다. 그의 말마따나 오늘날 음악은 ‘정보와 데이터 홍수 속에 금세 잊어버리는 콘텐츠 중 하나’가 됐지만 그가 한 장, 한 장 솎아낸 이 80장의 음반들은 음악이 무엇이고 왜 듣는지, 근원적 문답을 독자들에게 찬찬히 건넨다. 음악 때문에 가슴이 요동친 자들, 눈물을 흘려본 자들이라면 애정을 꾹꾹 눌러 담은 이 글귀 하나 하나를 쉬이 흘려 보낼 수 없을 터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가 2015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한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엮었다. ‘음악 편애’라는 제목 그대로 열렬한 음악 이야기들이다. ‘음악은 뮤지션의 이야기이자 의견이고 태도’라는 기치 아래 그는 ‘음악이 내는 말들’에 유심히 귀를 기울였다. 1960년대부터 활동하던 거장부터 오늘날 뮤지션에 이르기까지, 주류와 비주류 경계가 없는 대중 음악의 이야기가 고루 전해진다. 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추천사대로 “어쩌면 한 순간 소음처럼 사라져버렸을지 모르는 많은 음악조차 그의 글로 의미를 가진 텍스트가 돼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셈이다.
 
그의 글은 밥 짓는 것처럼 따스한 사람 냄새가 난다. 비평가라 해서 온갖 해학적이거나 거창한 수식어들을 들이 밀지 않는다. 음악이 좋을 때는 “좋다고 쓴다” 하고 모를 때는 “모르니 양해를 구한다” 한다. 그에게 ‘솔직함’은 비평의 자존심이자 윤리며 보루. 세월호를 그린 권나무의 ‘이천십사년사월’을 들으며 눈물 흘리고 가슴 먹먹해 하는 진한 글에선 음학(音學) 아닌, 음악(音樂) 자체를 사랑하는 그가 느껴진다.
 
저자는 페이지 곳곳에서 “음반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고 얘기한다. 모든 음악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들이 그리는 것은 특정 인물이며 청자는 그 인물에 감응한다는 점에서다. 또 “모든 음악이 사회를 그릴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사회를 기록하고 그려야 한다”고 말한다.
 
세월호 침몰 좌표를 제목으로 건 모던포크 뮤지션 니들앤젬의 싱글 ‘34N125E’는 그 곳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절망을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밴드 혁오는 청춘이 마주하는 격동과 그 잔해를 마주하며 동세대를 위로하고(음반 ‘23’), 싱어송라이터 김현성은 윤동주의 시들로 노래를 만들어 ‘등대’ 같은 역할을 한다.(음반 ‘윤동주의 노래’)
 
시대와 호흡하는 이런 음악들을 두루 살피며 저자는 “음악은 찰나의 희로애락과 자신, 타자, 사회에 대한 생각까지 표현할 수 있게 한다”며 “음악은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이고 생각을 표출하는 언어”라고 정의한다.
 
따스한 글들에는 줄곧 세밀하고 분석적인 평론들이 뒤따른다. 신중현, 들국화 등의 거장부터 아이유와 태연, 원더걸스 등 유명한 음악인들, 아직 대중들에게까지 닿지는 않은 아티스트까지 ‘듣고 느낀 솔직함’으로 얘기한다. 들국화의 1집 발매 30주년 기념 리메이크 음반을 두고 “들국화는 시대의 공기가 있었지만 (명반이고 뭐고 나는 내 이야기를 하겠다는 패기가 아쉬운) 리메이크 음반은 현재의 공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며 아쉬워한 대목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마음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평론’. 뮤지션 장필순이 서문에 쓴 글이다. 장필순은 저자가 “음악 자체의 모습을 바라보기보다 그 음악을 만들어낸 뮤지션의 마음을 깊이 보려 한다”고 했다. 벽돌 두께의 책을 밑줄 그며 읽는 와중, 시시 때때로 저 말이 왈칵 떠올랐다. 음반 수록곡 전곡을 거명하며 꾹꾹 눌러 담은 그의 ‘편애’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혔다.
 
'음악편애'. 사진/걷는사람
 
책 속 밑줄 긋기: 평론가라면 마땅히 음반을 듣고 평해야 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떻게 표현했는지, 그 표현은 성공했는지, 성공했다면 어떻게 성공했고 실패했다면 왜 실패했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음반이 서 있는 위치와 아우라에 대해서도 평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음반 이야기가 전부는 아닙니다. 음악계에는 다양한 이슈가 있습니다. 그 이슈들 가운데 능력이 되는 만큼 이야기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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